나 잔다
1 삶으로 가던 그대 얼굴 동주. 시대를 맞이했네. 시대 비장함은 죽고 주황으로 얼룩져서 나의 시대는 어디로 가나.
2 상으로 펼쳐대던 몇몇 텍스트는 관념으로 남아 킷치가 되었네. 박제된 동물의 눈 움직임을 보았소.
3 당신은 법신이 되기를 즐기십니까? 아무래도 나는 즐길 수가 없겠습니다. 정신머리가 두려워서.
4 맥아리 없는 시체들만 넘쳐나니 국운이 기우는 것이지 사회 갈등이나 경제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나라에 오천 만이나 필요할 이유가 있나? 사람이 기계가 되면 진짜 기계만 못하다. 인간을 소모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학력 좋다고 지식인 행세하는 머저리들보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이 훨씬 지식인답다. 지식만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식자층이 여물 먹는 소와 다를 게 뭔가? 명문대 나오고 나이 먹었다고 무슨 권위가 생기는건지.
그런 점에서 컴퓨터학은 여타 치사스런 분야와는 결이 다른 학문이다. 설카포를 나오든 고컴 연컴을 나오든 실력 없으면 도태되는 판이니, 반란의 학문이다. 더 나은 방법이 나오면 이전에 있던 방법의 권위는 사막바람에 모래 날리듯 사라져버린다.
5 신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가부장제는 가부장의 삶을 망칠 것이다. 엘리트주의는 엘리트의 삶을 망칠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의 삶을 망칠 것이다. 무한한 실천 혹은 무한한 관념 -인간 취사선택 -인공선택. 인간의 진화는 진행 중에 있다. 아주 끔찍한 진화가 될 것이다.
전인은 죽었다. 몸으로 뛰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머리로 쓰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6 이 글에서 생명체가 탄생한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7 온갖 수사와 기술을 늘어놓고서는 보기 좋은 모습만 떡하니 보여주는 게 글이라면 글 쓸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니가 난잡한데 어떻게 정돈된 글이 니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거냐? 읽기 쉬운 글은 교과서로 족하다. 독해 시간에 정보가 아니라 사람 읽는 법을 배워야한다.
8 솔직히 좋은 글의 기준을 논하기도 전에 글에 피드백을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좋은 글의 기준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크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다. -인간은 사고 바깥에서 사고할 수 없으므로 사고 바깥에 어떤 괴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하물며 사고 내에서 우물 안 개구리들끼리 서로를 잡아먹으려 혀를 낼름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막말로 죽으면 어차피 다 끝이다. 잠깐 놀다 가는 것 외에 삶이 취할 수 있는 의미가 없다.
9 층위는 보는 이의 깊이에 의해 결정된다. 단순한 이는 모든 글을 단순하게 본다. 본인이 어떤 글의 함의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어린아이의 일기 같은 글일지라도 좁은 글에 비해 정신은 한없이 넓다.
10 죽음은 필연적인가? 그럴 수 없다.
(1) 세계는 오로지 내 눈 앞에 놓인 주관적 세계다. 그 외의 세계를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다.
(2)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세계의 안에 있다.
(3) 죽음은 세계의 소멸이다.
(4) 고로 죽음은 세계 안에 놓일 수 없다. 죽음이 세계 안에 놓이는 순간, 그 세계는 없는 세계다.
(5) 그러므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11 땅이 울리는 것 같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