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쁜 관계
9.
내 환자의 대부분은 학령 전후기 아이들이었다. 이 중에는 발음기관의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아이들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의 동반으로 언어 지연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말을 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입술을 열고 성대를 움직여 소리를 의미 있는 음성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매 음절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입술을 움직이고 혀를 움직이고 소리를 내뱉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기능적인 원인을 가진 환자보다 더 힘든 케이스는, 심리적인 또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의 증상으로 언어지연을 가진 아이들이다. 소통을 거부하는 아이들과 마주할 때, 어떻게 이 아이들에게 접근해야 할 지 막막함을 느꼈다. 주지 못 하는 것보다 슬픈 것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모를 때이다.
언어치료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많았다. 하루 6~8명의 환자들을 받고 있었지만 대기명단은 언제나 마지막까지 채워져 있었다. 세션이 끝날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감사는 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낸 아이는 물론 치료시간 동안 복도에 앉아 간절한 눈빛으로 아이의 발달을 바라는 부모님께 보내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한 아이의 ‘졸업’을 통해 새로운 아이를 받을 수 있게 됨에도.
새로운 환자를 받는 날이었다. 첫 치료를 시작하는 아이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이름: 권지안/ 남
생년월일: 2018년 6월 20일/만 7세
코드: 2025-001123
진단명: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코드…
자폐아동의 경우 언어치료의 예후는 아이마다 극명하게 달랐다. 어떤 아이는 몇 달 만에 단어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어떤 아이는 시선조차 맞추지 못했다.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아이는 푸른빛 반팔 셔츠에 무릎보다 약간 긴 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얀 운동화가 깨끗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무릎보다 약간 긴 민소매 원피스에 잔잔한 꽃무늬가 차분해 보였다. 귀밑까지 오는 단발머리는 드라이한 듯 컬이 생생했고, 옅은 화장이었지만 눈썹과 눈매가 선명했다. 신경 쓴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지안아, 안녕하세요 해야지.”
자폐 아동에게 인사를 시키는 것, 그것은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예의를 갖추려는 엄마의 의도가 느껴졌다.
지안이의 언어발달은 연령에 비해 매우 늦었다. 그것은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대신하여 아이 엄마와 아이의 상태, 그간의 치료 기간과 방향들을 이야기했다. 대화 내내 엄마는 격해지지도 울지도 않았다.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대부분은 부모 역시 심리적으로 환자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세상을 마주는 것이라 누군가 그랬던가. 심연의 세상을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 부모에게는 심연보다 큰 인내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짧은 대화만으로도 지안의 엄마에게 호감이 느껴졌다.
“지안아, 지안아, 안녕?”
의자에 앉은 아이는 계속해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상동 행동이었다. 아이가 불안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 유독 심한 듯 해요.”
아이 엄마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만나본 자폐아동의 부모들은 대부분 위축되어 있었다. 아이가 피해를 주지 않을까, 아이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것은 아마도 빈번한 ‘거절’이 학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안의 엄마도 그래 보였다. 혹시 언어치료가 불가하다고 하지는 않을까……하는 엄마의 조바심이 느껴졌다.
“첫 시간엔 모두가 다 긴장해서 그래요. 이렇게 잘 앉아있는 것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에요. 지안아, 우리 잘해보자.”
고개를 숙여 지안의 눈빛을 찾았다. 아이의 눈빛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이는 이 모든 상황에서 동떨어진 듯 보였다. 그것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이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몸을 흔드느라 바지가 허벅지 위까지 딸려 올라갔다. 아이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들이 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오늘 새로운 아이가 왔어요. 자폐예요.”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정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아, 힘들겠네요.”
“아니에요. 아이는 순해요. 선생님이 훨씬 힘들죠.”
“이번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직접 만나진 못했더라도 정 선생님 역시 서류상으로 지안의 정보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자가 올 때마다, 그리고 기존 환자가 치료를 마칠 때마다 정 선생님은 일이 어땠는지, 환자를 대하는 내 기분은 어떤지 묻곤 했다. 그것은 환자들을 대했던 묵은 마음을 털어주기도 하였고, 새로운 환자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도 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느꼈던 첫 느낌 그리고 어떤 식의 유대와 접근이 필요할지, 그리고 지안의 엄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안의 엄마가 입은 잔무늬 원피스의 색깔까지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재미없지 않아요?”
혼자 이야기를 쏟아놓던 것이 살짝 멋쩍어졌다.
“저는 지영 씨가 이야기하는 거 듣는 게 좋아요. 노래 같아요.
“그럴 리가요.”
“지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치료하는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알아요. 그건 진심 없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에요. 지영 씨는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긍정적인 사람?’
속으로 반문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긍정적이기보다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지만. 그것은 삶에서 얻어진 경험이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었다. 노력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긍정의 힘? 바라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나의 노력이, 바람이 부족해서인가? 환경적인, 주변의 장애물은, 그 역시도 극복하지 못한 나의 잘못인가?’
그것 역시 방어기제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때 오는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그래서 차라리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버리고 마는.
‘긍정적인 사람?’
그런 사람, 그러니까 어려움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것은 나보다 정 선생님에 가까웠다. 그가 나에게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것 처람.
퇴근 길, 정 선생님과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내가 사는 건물이 가까워 올 수록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배여 나왔다. 걸음이 느려졌다. 우리가 닿기도 전 건물의 센서등에 불이 켜졌다.
“……”
말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은 말보다 진하게 의미를 전하고 있었다.
“……”
그가 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 입술을 닫고 있을 수 없을만큼 뜨거웠다. 열린 입술 속으로 끈적하고 부드러운 혀가 느껴졌다.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이 목덜미로 내려왔다. 키스가 깊어질수록 손은 목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등으로 내려왔다. 몸이 녹아 내리는 듯 아득해졌다. 그의 손은 허리까지 내려왔다. 입술은 거칠어졌고, 허리를 감싸고 있던 큰 손이 허리를 쥐었다. 나는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귓볼까지 뜨거워졌다. 그의 조금 빨라진 심장박동이 내 가슴에 닿을 때, 그가 입술을 뗐다.
“……”
“갈게요.”
그가 말했다. 나의 달뜬 얼굴과 침으로 반짝이는 입술과 배어 나온 땀에 살짝 젖은 잔머리를 보며.
한 마디 간결한 말 속에서 어렸던 날의 수혁이 겹쳐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참아내는, 나를 아끼는 그들의 방식임을.
집에 들어서자 몸의 긴장이 풀렸다. 아직까지 자각할 만큼 열기가 느껴졌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입고 있던 블라우스의 위 단추 세 개를 풀고 목 위로 벗어냈다. H라인 치마의 허리가 갑갑하게 느껴져 지퍼를 내려버렸다. 속옷만이 남았다. 브래지어를 풀며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물을 채우며 팬티를 벗었다. 미지근한 물줄기를 맞아도 익은 몸의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욕조의 물을 채우고 누웠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닿았던 곳을 더듬었다. 입술, 목덜미, 귓볼, 어깨를 지나 허리까지. 그가 했던대로 허리에 손을 대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가 잡았던 것만큼 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리에 있던 손을 위로 올렸다. 가슴을 쥐었다. 손 안에 다 들어오는 작은 가슴. 더 세게 가슴을 쥐었다. 다시금 숨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따랑’
그때였다. 휴대폰 문자 알림이 울린 것은. 서둘러 폰을 집어들었다. 정 선생님이 발걸음을 돌려 온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감으로.
‘만나자.’
짧은 세 글자.
그것은 수혁의 문자였다. 나는 폰을 내려놓고 물 속으로 머리를 담구었다.
‘그래, 그냥 이렇게.’
물 속에 잠겨 있고 싶었다. 잠겨있어야 했다. 마시고 있던 산소를 모두 소진하고 숨이 막혀왔다. 숨. 숨이라는 것은 뭘까. 살아있게 하는 것, 살아있다고 자각하게 하는 것. 들이 쉬고 내쉬는 작용 속에 숨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명을 부여하고 살아있음을 유지시키는 것일까.
‘숨 쉬고 싶다. 숨 쉬고 숨쉬고 싶다……’
물 속에서 뇌아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물 위로 고개를 쳐들었다. 물 속에서 숨을 참느라 삼켰던 물을 토해냈다. 빳빳해진 유두를 느꼈다.
‘—동, --빌라 00호.’
Send 버튼을 누르고 나는 다시 물 속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죽고 싶은 것인지 살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벨이 울리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수혁이 서있었다. 남색 정장바지, 남색 자켓, 그 안에 하얀 셔츠의 위 단추 두 개가 풀려있었다. 그에게서 술냄새가 풍겼다. 호밀향에 얹혀진 소주 냄새. 수혁은 현관턱을 한 걸음 앞에 두고 문 앞에 서있었다. 허락을 기다리는 듯.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혁의 셔츠를 가볍게 당겼다. 수혁의 몸이 힘없이 인형처럼 나에게 쏟아졌다. 그의 무게에 뒤로 넘어질 것 같았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는 몸을 그가 안아 올렸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문 앞의 그를 볼 때부터, 초인종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아니 그의 문자를 읽었을 때부터 뛰고 있었다. 마치 아픈 사람처럼. 그 박동이 그에게 느껴질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의 심장 박동이 내 가슴에 닿았다. 손이 가슴을 쥐었다 놨다 하는 것처럼 강하게.
“다 해도 돼요.”
나의 말이었다. 그의 숨이 더욱 거칠어졌다. 왼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쥐고 팬티를 벗기는 오른손을 느끼며, 생각했다. 말하지 않았어도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