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인들의 해피 투게더

독일 땅에서 만난 트랜스 젠더

by lee

작은 동네다. 맞은 편 건물에 개가 몇 마리 사는지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집을 구할 때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은 안전이었다. 해가 진 이후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 무섭지 않을 정도가 내가 생각했던 안전의 기준이었다.


안전한 우리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 아니면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단위이다. 모르는 사이에도 가벼운 눈인사 정도는 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으면 잘 보이게 어딘가 걸어놓을 정도로.

그런데, 이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항상 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화려한 옷차림도 눈에 띄지만 190은 넘어보이는 키 때문에도 그, 혹은 그녀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였다. 누가봐도 알 수 있는.

동성연애자, 트랜스젠더, 여성도 남성도 아닌 무성, 이 정도가 내가 가진 성소수자의 세계였지만 트랜스젠더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동성연애자도 사랑의 한 방법일 뿐이고,

트랜스젠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아닐까


,이 정도면 열린 사람이지, 라 자부했었건만. 나는 멀리서도 그녀가 보이면 길을 돌아가곤 했다. 그것은 거부감이나 불편함의 종류는 아니었다. 오히려 여자같이 않은 여자의 모습은 그런 감정보다는 안쓰러움을 일으켰다. 저 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여자인 나는 나의 여성성을 너무 당연히 생각하고 있진 않았나 하는.


그럼에도 그녀를 피했던 건 두려움이었다.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 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그야말로 차별주의자라 비난받더라도.

나는 한국에서 몇 번 변태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의 지인은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변태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하지만. 그리고 그 경험은 무의식에 각인되어 ‘달라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적은 공포심을 갖게 만들었다.


작은 동네에서 우리는 자주 마주쳤다. 그녀는 늘 같은 시간에 트램을 탔고, 나도 그 트램을 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정류장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혼자였고 그녀도 혼자였다. 말할 일도 말걸 일도 없이.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유모차의 아이들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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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다. 트램역에 서 있던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 말을 걸었다.

할머니까지는 아니지만 중년보다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성이었다. 처음엔 아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짧은 독일어로도 그 대화는 그들이 초면임이 확실해 보였다. 아주머니는 그녀가 가는 방향을 물어보고 그녀의 대답에 맞추어 그녀가 하는 일을 물었다. 둘의 대화는 트램이 올 때까지 깔깔대며 이어졌다.


나에게도 간혹 있는 일이긴 했다. 어디에서 왔니, 어느 나라 사람이니, 너는 이 동네 어디에서 사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남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모습, 그건 어떤 종류의 충격이었다.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던 그냥 너무 남자같아 보이는 거구의 트렌스 젠더는 그저 친절한 동네 주민일 뿐이었다. 짙은 어색한 화장을 볼 필요도, 노골적인 원색 스타킹을 볼 필요도, 긴 머리를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겉모습을, 옷차림을, 화장법을 보고 움츠러 들었던 건, 그래서 당당하지 못했던 건, 그래서 사회 속에 세상 속에 없는 사람처럼 숨고 싶었던 건, 나였다. 완전한 몸에 불완전한 마음을 가진, 나였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를 생각했다. 감독의 여러 영화들이 문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중 해피 투게더는 90년대 영화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수위이다. 아시아 영화로서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었던 것도, 그리고 영화에서 담아낸 대담한 표현들도.


해피는 투게더다. 함께하는 것이 행복이라 말하는 그들.

그녀는 진짜 여자가 얼마나 부러울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녀는 나보다 행복한 사람인지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두려움없이 살아가고 있기에.


한국보다 빈번히 증오범죄가 일어나는, 아직까지 남성다움을 힘으로 생각하는 아리아인들의 땅에서 그녀의 삶은 언제나 오늘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 역시 이 작은 동네까지 와야 했던 것일지도. 그녀에게 해피 투게더의 땅은 어디일까. 과연 그런 곳에 존재하긴 할까.


고민하는 대신 오늘도 손질한 다리에 스타킹을 신고 거울 앞에서 정성들여 화장을 할 그녀를 떠올려 본다. 그녀의 해피 투게더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