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이 싫다

by lee

나는 독일을 좋아했다. 대륙이 어떻게 나뉘었고 대륙 별로 어떤 국가들이 있는지 개념을 익히기도 전부터 나는 막연히, 그리고 무작정 독일을 좋아했다.

그건 한 에세이 때문이었다. 예술가이자 아빠가 다른 다섯 아이의 엄마인 작가가 독일 땅에서 살아가는 내용을 소재로 한 에세이였다. 에세이라는 것이 작가의 삶을 담고 있다보니, 그 책의 타켓층은 역시나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었다.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11살을 넘지 않았을 때였다. 책을 읽었던 내 방과 그 당시 내 몸에 맞았던 책상을 떠올려 보면, 그 당시 내 나이는 초등학교 2학년에서 많아도 4학년 1학기를 넘지 않았을 때였다. 4학년 2학기 우리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까.

아이가 볼 책은 아니었다. 사별과 재혼과 국제결혼과 임신과 육아와 인종차별과 학교폭력들이 그 책의 소재였으니까. 그리고 그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의 소재가 지금도 줄줄 나오는 걸 보면, 그 책은 당시의 나에게 꽤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독일을 찬양하지도 독일을 증오하지도 않게 담아낸 그 책을 통해 나는 독일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몇 십 년 후, 독일에 살고 있다.


지금 나는, 독일이 싫다.

독일에 오기 전 생각했던 것과 독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은 맛이 없고, 날씨는 춥고 건조하고, 사람들은 유머가 없다. 정직하고 근면한 독일인이라 하지만, 정직과 근면으로 치자면 한국인을 따라갈 국가가 없다. 검소한 독일인들이기에 여기선 미용실도 사치다. 다들 자기가 가위로 머리를 잘라가며 산다. 가끔 릴스나 유튜브에 ,십만원으로 독일에서 살 수 있는 것!, 이라며 생활물가가 엄청나게 싼 것처럼 나오지만, 식당에 가면 메뉴 하나에ㅔ 15~22유로(2만 2천원~ 3만원)이 기본이다. 그리고 음료수를 꼭! 따로 주문해야 한다. 그게 수돗물일지라도.

나는 독일이 싫어졌다.


그럼에도 돌아가지 않는 이유, 아니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내가 이제 열 한살 소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와! 신기하다!, ,재미있겠다, 라며 그 세상에 폭 빠지는 것은 나이에 상관이 없지만, 어른이라는 것은, 저지른 일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니까.

,아, 마음에 안들어! 싫어 싫어!, 하고 가방을 싸버리기엔 사람들이의 기대, 아마도 네가 거기서 잘 살고 있겠지, 라는 그 기대를 저버리기 힘드니까.


나는 찾아보기로 했다. 이 곳의 좋은 점들을.

아마도 조용한 우리 동네. 클락션 소리만 조금 커져도 창문으로 너댓집이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는 평화로운 우리 동네. 사람들과 덜 부딪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단순해 지는 것이기도 하다. 무료와 평화는 종이의 앞뒤와 같으니까.


동물들이 많이 사는 우리 집. 동네에서 여우를 봤다고 하면 아마 큰 개를 잘못 봤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여우가 맞았다. 내가 본 것이 개인줄 알고 옆 사람에게 개가 크다고 했더니 저건 여우라고 나를 여우를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으니까. 아무튼 주택가에서 여우를 볼 수 있는? 우리 집.


성대한 크리스마스.

12월을 몇 주 앞둔 요즘, 이곳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이다. 예쁜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빨갛고 금색이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데코는 오 여기가 유럽이네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나는 한국이 그립다. 보행자에게 자비없는 거침없는 운전자들이, 밤 중 고상방가로 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이웃들이, 어깨빵을 기분 나빠할 수 없는 붐비는 지하철이, 만원 짜리 한 장으로 삼각김밥과 컵라면과 빵을 사먹을 수 있는 편의점이.


잠깐이기를 바라는 이 향수병을 털어놓는 것으로 덜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이것은 다가 아니겠지만, 내 부끄러운 마음에 솔직해지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했지만, 아직은 내뱉기도 어려운 마음을 다시 담담히 잡아보기를 소망한다.

담담하게.

담담하게.

1.jpg


이전 01화아리아인들의 해피 투게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