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처음 왔던 것은 벌써 몇 년 전이었다. 오랫동안 상상 속에만 있던 이 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의 감정은 모든 것이 ,긍정적, 이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도, 곳곳에 아기자기 잘 조성된 공원들도, 아기자기 까페의 테라스들도 그건 모두 엽서에서나 보던 그림들이었으니까.
다니던 대학교 안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길치이면서도 겁도 없이 도시를 누비고 다녔고,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가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따뜻함이 없는 도시는 정돈되어 보였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는 않았었던, 그러니까 그건 ,무지,의 상태였던.
환상은 환상적이지만 그래서 깨어질 때 더 아프기도 하다. 그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트램 안 빈자리에 앉았을 때 창가에 먼저 앉아있던 젊은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무시하려던 나에게 나쁜 말을 했다. ,더러운,이라는 단어가 섞인, 안타깝게도 독일어를 몰랐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욕이었다. 문신한 사람이 안한 사람보다 흔해보이는 이곳이지만, 헤드스킨과 목까지 타고 올라간 타투에 나는 겁을 먹었다. 그리고 나의 그 공간을 떠날 수 없이 머물렀다. 그 사람이 먼저 내릴 때까지. 혹시나 그 사람이 나를 따라 내려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웬일로 사람이 없었던 날,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을 때였다. 뒤에서 나를 만지는 손이 느껴졌다. 그냥 손을 댄 것이 아니라 무릎 위부터 엉덩이까지. 놀라 돌아봤을 때 그 남자는 웃고 있었다. 더 모욕적인 손동작과 함께. 한국에서부터 언제나 성추행에 대한 대처를 배워왔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나를 앞서 사라졌고 나는 뒤늦게 지하철 인포센터에 가서 내가 당한 피해를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영어를 못했고 당시의 나는 독일어를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은 ,tut es mir leid(안됐다), 라는 것 뿐.
한국에서 내 것을 주장하진 못해도 손해를 보고 살진 않았던 나는, 이곳에서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무력했다. 그리고 무능했다.
나는 독일인이 싫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아름다운 도시를 거닐지도 않았고, 걸어가는 거리 외 출입을 꺼렸다. 고요한 도시에서 나는 조용해져 갔다.
열심히했던 것은 어학이었다. 말 못하는 자의 서러움과 불편함을 톡톡히 느꼈으니까. 나는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자주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어느 날, 사람들이 가득찬 엘레베이터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다. 거기엔 큰 거울이 달려 있었다.
흰 파부와 밝은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독일인들 사이 내가 보였다. 나는 눈에 띄었다. 나에게 익숙한 얼굴이어서가 아니라, 그건 내가 그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둥근 얼굴, 지나치게 검은 머리칼. 나는 눈을 돌렸다. 사람들 속에 나는 이렇게 보였겠구나. 눈에 띄는 내가 싫었다.
하지만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한국사람이고 여기는 독일이니까. 내가 그들과 달라보일 수 밖에 없는 건,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고.
어떤 사람에게 나는 그가 아는 유일한 한국사람이고, 그 사람에게 나는 한국인의 전형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사람들은 겁이 많고 조심스럽고 말이 적고 언제나 웃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나일 뿐이지, 한국 사람을 설명할 순 없다.
내가 만났던 몇 몇의 독일 사람들은 나빴다. 하지만 몇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오케이였고, 몇 몇은 좋았다.
내가 싫어했던 건 독일 사람이 아니라 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쁜 렌즈를 끼고 바라봤던 곳도 이곳이었고 움츠러들어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라봤던 곳도 이곳이었다. 여기는 변한 것이 없다. 변한 것은 나의 마음이었을 뿐.
어떤 것은 아프게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독일 사람을 싫어하기 전,
나를 싫어하지 않는 마음을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