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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Oct 30. 2022

방 이야기

내가 살아왔던 많은 방들에 대한 이야기

 온몸을 온통 뒤져도 하나뿐인 코를 통해 산소를 들이마시기 전에 잠시 살았던 방이 있다. 누구나 가졌을 방이지만 결코 똑같을 수는 없는 방. 몇 명이 나눠 썼을지도 모르지만 자기만의 몫이 있었던 방. 그곳에서 겪은 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으며 전무후무하다. 당시를 추측하자면 지금까지 느꼈던 온도 중 가장 따뜻하고 뜨거웠을 테다. 엄마가 자주 틀었다던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을 테고, 그녀가 여름날 수박을 먹을 때 함께 달콤함을 느꼈을 테다. 엄마는 두 살뿐인 오빠와 더불어 무거워지는 배를 보살피며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꼈을지 모른다. 일 때문에 아침과 저녁에만 볼 수 있던 아빠, 작고 밥을 조금 먹던 오빠, 그보다 더 작았으나 가장 무거웠던 나. 세 명을 계절 내내 돌보며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품었을 테지만 그녀는 훗날 말했다. 힘들어도 사랑으로 버텼다고. 이 한마디에는 축약된 여러 마디가 있다. ‘둘째가 배를 발로 차는 순간은 외로움마저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첫째가 두 다리를 사용해 서는 모습을 보니 입을 하나 더 만들어 환호성 지르고 싶었다.’ 이렇게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사랑한다는 한 단어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무슨 사랑일까. 정해진 일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고 여겨 단정 짓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만큼은 확신한다. 이 방은 지금까지 겪었고 겪을 방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방이라고. 아무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방이라고.


 모두가 이 방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공간적으로 세 개의 방을 거쳤다. 살면서 이사를 세 번 했으며 집을 옮길 때마다 누군가와 같이 쓰거나, 혼자 쓰는 방이 생겼다. 방 안에는 무수한 방이 재창조되었다. 친구를 만나며 애인을 만나며 어른을 만나며 아이를 만나며 들이마신 숨을, 방으로 돌아와 다시 내뱉으면 더 이상 하나뿐인 방이 아니게 되었다. 지나쳐왔던 방들의 하얀 벽지에는 눈물과 행복과 사랑과 서러움이 박혀 있었다.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여러 숨이 모여, 혼자였지만 혼자일 수 없는 방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과 만들었던 첫 번째 방은 셋 중 제일 작았다. 그 방은 7살까지 오빠와 공유했으며 우리는 지독하게 싸웠다. 어느 날 벌어진 이불 쟁탈전이 그렇다. 오빠가 같이 덮어야 하는 이불을 가져가길래 다시 빼앗기 위해 이불을 이로 꽝 물었다. 오빠는 계속 이불을 잡아당겼고, 몇 초 후 아래에 있는 앞니가 빠졌다. 유치라 망정이지 평생 쓸 치아였으면 아주 많이 슬플 뻔했다. 이후에 난 앞니는 뒤로 들어가 있다. 어떤 일이든 나서지 않으려고 애쓰는 미래를 대변하듯 말이다. 오빠와 함께 쓴 방은 짜증이 났고 무섭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 갑자기 침대 밑에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잡혀도 같이 잡히겠지, 죽어도 같이 죽겠지 싶어서 말이다. 심심하지도 않았다. 앞통수보다 뒷통수가 튀어나온 컴퓨터 모니터 앞에 같이 앉아 게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게임을 알려주던 오빠는 아니었으나 옆에서 구경만큼은 실컷 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렇게, 오빠와 내가 직선으로 누우면 꽉 차던 작은 방에서, 남매를 배웠다.


 두 번째 방은 가장 철이 없고 친구가 중요했던 시절에 만났다. 평생을 같이 산 가족과도 매일 싸우는데 친구들과 싸우지 않을 리 없었다. 아주 많이 상처주고 양보하고 화해하고 서글펐던 날들 투성이다. 행복하기만 했다고 말하는 건 거짓이지만 행복한 시절이 있던 건 사실이다. 16살,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던 세 명끼리 하교하던 때가 그랬다. 우리는 루틴이 있었다. [교문 앞에서 존재감을 휘날리며 서 있는 매점에 들려 한 개에 100원인 만두를 사 먹고 설렁설렁 후문으로 걷는다, 걸으면서 별 얘기도 아닌데 큰 소리로 웃으며 주저앉는다, 주택 밖으로 나온 어느 집 강아지를 보며 귀여워한다, 육교 위에서 마주 오는 기차를 보며 기장 아저씨한테 손을 흔든다, 그리고 다시 큰 소리로 깔깔 웃는다!] 집과 학교 간 물리적인 거리는 걸어서 30분이었고 우리만의 집과 학교 간 거리는 걸어서 3시간이었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귓바퀴에 고이 모아 저녁에 방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방은 재미와 내일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세 번째 방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계속 살고 있다. 이 방에서 보낸 시간은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살면서 얻은 대부분의 깨달음이, 여기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니 남의 돈을 벌고 남의 글을 읽은 이후일 거라 가늠한다. 돈을 벌고 글을 읽으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잠시 그들의 방에 머물다 온다. 간혹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고픈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도 나름 자기 방을 지니고 있다. 타인이 주인인 방에서 서로 맞닿을 때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저 인간처럼 살지 않으리라는 다짐, 저 아이처럼 단순하게 미소 지으리란 다짐, 저분처럼 다정하게 싸울 거란 다짐, 저 친구처럼 아름답게 세상을 쳐다보리란 다짐 같은 것들을. 다짐을 배우지 않아도 괜찮다. 한 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을 배운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떠한 부사도 형용사도 붙지 않는, 인간 자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이런 방도 있고 저런 방도 있으리라 이해하는 마음은 어렵지만 계속하고 싶다. 되도록 많은 방에 머무르고 사랑하고 싶어진다.     


나-엄마-아빠-오빠-우리 고양이-친구들-은사님-직장동료들-함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연락이 닿지 않는 인연들-한때 증오했던 어떤 어른들-걷다가 스쳐 지나간 사람의 방 모두를     


사랑의 방에는 없는 게 없다. 귀여운 동물들이 살고 꺄르르 웃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친구가 있고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과거가 살아있다. 삶이 만만치 않다는 한탄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죽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랑의 방은 자신 안에서 헤엄치는 모든 존재를 감싸 안는다.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꽈악 껴안는다. 어떤 모습도 너라는 듯이. 그런 모습도 나라는 듯이. 이처럼 따뜻하고 뜨거운 온도에서 움직이는 만물은 땀을 흘리며 녹아내린다. 다시, 그 안에는 사랑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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