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팅게일 Jan 03. 2023

상실의 보건실

보건실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나는 어릴 때부터 상실을 무서워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12살에 이런 일기*를 썼을 리 없다.


 떠난다. 잃는다. 사라진다. 보고 듣고 맡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가끔 잊는다. 문득 외롭다.


모든 열두 살들이 저 말을 몸서리치게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으나 위에 있는 일기를 쓴 열두 살은 그랬다. 그날 차가운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든 오른손으로 ‘떠날 거라는’, ‘죽을 거니까’, ‘슬프고 무섭다’라는 단어를 꾹꾹 눌러썼다. 그리고 허공을 잡은 왼손으로는 눈을 꽉꽉 눌렀다. 종이가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도록 말이다. 일기를 검사하는 담임선생님께 번진 글자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 잃는 게 무섭다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걸까? 어차피 내용을 보면 아실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울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싫었던 것 같다. 보통 운다는 건 상대가 굉장히 소중해서 생기는 일이다. 다홍색으로 가득 찬 하늘을 보거나 조덕배 아저씨의 「나의 옛날이야기」,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를 부르며 기타를 치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그렁그렁해지는 눈’이 딱 들어맞는 예시다. 우리 눈에는 아주 귀한 상대가 매일 담겨있다. 익숙해서 있는지 몰랐던 그들이, 눈물이라는 형태로 흘러내릴 때 갑자기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상대를 한 방울도 잃을 수 없어서 잽싸게 볼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낸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 아끼는 걸 정말로 떠나보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 잃는 건 왜 무서울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포근포근한 우리 집 고양이 뱃살이 없었다면, 조미료 없이 부드러운 엄마의 미역국이 없었다면, 사계절 대신 매섭게 추운 겨울만 있었다면, 글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글을 쓸 수 없었다면 열심히 잘 살았을 테다.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리워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슬퍼하는 마음이 없어졌을지 모른다.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슬근슬쩍 마음을 열고 들어온 존재들로 인해 불현듯 그립고 외롭고 슬퍼진다. 그런 마음으로 한때 아끼는 걸 늘리고 싶지 않았다. 2022년 6월 10일에 썼던 처럼 오감이 갈망하는 것들도 애써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좋아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었다. 아, 사랑은 왜 상실을 수반할까. 언젠가 사라질 걸 알면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능한가.


 보건실에는 늘 사라지는 애들이 있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나보다 반절 정도 산 아이들이 찾아온다. 애들은 몇 년이 지나도 나이가 똑같고, 방문하는 사람만 달라진다. 걔넨 졸업하고 사라지는데 나는 나이를 먹으며 계속 보건실에 머문다. 요새는 언젠가 떠날 아이들이 자주 놀러 온다. 보실이들은 매일 쉬는 시간이 되면 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와 대화를 건넨다. 얼마 전에는 책상 주변에서 돌아다니길래 “내가 쓴 글 볼래?”했더니 냉큼 받아 읽었다. 읽자마자 다음에 자기들이 쓴 글을 들고 온다고 신신당부하더니 정말 들고 왔다.


 그중 어떤 보실이**는 소중했고 앞으로도 계속 소중할 어떤 존재에 대한 상실을 썼다.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에 보실이의 마음을 찬찬히 읽으면서 조금 울었다. 보실이가 쓴 글이 슬근슬쩍 마음에 들어와 소중해졌다. 한 톨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어서 눈에 고인 물을 얼른 집어삼켰다. 그리고 일순간 바랐다. 보실이가 서른한 번째 계절을 맞이했을 때 이번 계절에 썼던 상실을 잊지 않아 주기를 말이다. 그 애는 살면서 겪어야만 하는 상실을 차곡차곡 꽂아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원할 때 꺼내보고 다시 제자리에 넣을 수 있는 상실책장을 만들어, 잃고 잊는다는 마음과 의연하게 악수하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보실이들과 나, 통칭하여 ‘우리’는 마지막 안에서 만남을 계속한다. 너무 소중해질까 봐 두려운 존재들과 마주 보고 닿는다. 이 만남은 새로운 만남을 탄생시킨다. 보실이들과 2023년에 글쓰기 자율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글을 쓰기로 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한 단어 내뱉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비통함을 고요하게 쓸 테다. 끝이 다가올 때 모퉁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존재에 대해, 심장 중 가장 아늑한 부분을 손으로 옮겨 글을 쓰고 읽을 것이다. 그들과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언젠가 끝날 거란 미래를 알고 있다. 어쩌면 시작조차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자처한다. 아마 사랑 덕분이리라.     


 떠난다. 잃는다. 사라진다. 보고 듣고 맡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가끔 잊는다. 문득 외롭다.

여전히 두려운 말이지만 사랑이라는 팔짱을 끼면 언젠가 사라질 ‘우리’를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꼭 보실이들과 '우리'를 걷는 보건실을 만들어보리라, 다짐한다.



* 성인이 된 후 기억을 더듬어 재작성한 일기라 당시보다 어휘와 내용이 매끄러울 수 있다. 최대한 12살의 그날처럼 쓰려고 노력했다.

** 보건실에 자주 놀러 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불러줄지 물어봤더니, ‘보건실’을 줄여 ‘보실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 '남'이 많이 들어가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