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교 겸 출근하는 보건교사
1999년 3월 2일에는 뭘 했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처음으로 학교를 간 날인데 기억이 안 난다. 추측컨대 아침 7시에 일어나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씻은 뒤 털 달린 외투를 입었을 거다. 엄마는 책가방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잊은 물건은 없는지 생각했을 거고 마침내 우리 둘은 서로 가진 따뜻한 손을 꼭 움켜쥐고 발걸음을 맞추려고 노력했을 테다. 그날만큼은 긴 엄마 다리가, 짧은 내 다리를 평소처럼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엄마 인생에서 학교에 입학하는 딸은 처음이기에.
2023년 3월 2일은 자세히 떠오른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엄마가 해준 밥을 못 먹고 씻은 뒤 검정 코트를 입었다. 책가방대신 도시락가방을 들고, 차가운 손을 꼭 주먹 쥔 채로, 혼자 차까지 빠르게 걸어 아슬하게 학교에 도착했다.
어쩌다 보니 1999년부터 오늘까지 학교에 머무르고 있다*. 크게 변동**이 없다면 내일도 글피도 학교에 갈 것이다. 가끔 바뀌지 않는 매일의 목록을 생각한다. 주중 8:30 ~ 16:30 동안 보건실이라고 쓰여있는 공간에 앉아있기, 4교시에 수업이 있으면 평소보다 빨리 점심 먹기***, 보건일지 쓰는 시간에는 제발 아무도 안 들어오길 빌기…
변함없는 목록에서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학생들이다. 정말로 어쩌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을 봤고 보고 있다. 애들을 보면 여러 가지 감상이 생긴다. 지금보다 애들이 훨씬 많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그들을 보며 이런 감상을 남겼다.
내가 일하는 곳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우리 엄마뻘 정도 되는 분도 있고, 또래도 있지만, 그중 가장 흔한 연령대는 내 인생의 절반 정도 산 사람들이다. 어느샌가 그들과는 하루 중 가장 많이 만나고, 아주 무수한 장난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개인사와 함께 웃음을 교환한다. 어떤 사람은 1년 동안 짝사랑했던 친구와 만나고, 50일 만에 헤어졌다는 슬픈 연애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이와는 주변에 있는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을 논쟁했고, 누군가는 이번 시험에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30점이나 받았다는 이야기를 읊어준 적이 있다.
그러나 마냥 마음 좋은 대화만 주고받을 수는 없다. 그들보다 조금 더 살아온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해주어야 하는 말들이 있다. 단어로 설명하자면 예절, 책임감, 배려, 존중과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쓰리게 만드는 말은 잘하지 않아서, 이 순간이 올 때마다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해야 그들의 시선에서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단어와 목소리를 고르곤 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그들 앞에 서는 시간은 대부분 재미있다. 나보다 두 배는 더 산 사람으로 인해 얻은 딱딱한 멍울이, 두 배는 덜 산 사람으로 인해 부드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썹이 떨릴 정도로 “안녕하세요!”라고 크게 인사를 하는데, 이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말이 너무 많은 30명 때문에 더 소리를 높이느라 목이 아프지만 묵적하게 눈을 감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들은 아주 귀엽고 미운 사람들이다. 귀여움보다 미움이 커질 때쯤, 그들이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한다. 또 그 나이에만 보여줄 수 있는 활기찬 모습과 근본 없는 사랑스러움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나를 아침에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화장실로 걸어가 이를 닦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아직도 나는 엄마에게 학교 가기 싫다는 소리를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평생 그 소리를 듣고 산다며 한숨을 쉰다. 아마 강산이 변해도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겠지만, 그건 그냥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입에 붙은 투정임을, 엄마는 모를 것이다. 출근하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 원더걸스가 데뷔하던 시절에 태어난 사람들과 얘기할 때라는 걸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보다 애들이 반절로 줄어든 학교에 오니 더 재미있다. 자기들끼리 축구하고 목말라서 물 마시려고 우르르 들어오는 애들, 수업시간인데 보건실에 와서 길게 말 걸면서 수업을 듣지 않으려는 애들, 보건수업 때 집중하라고 해도 시끄러운 애들이 반절로 줄어서 그런가 보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8살부터 보아왔고 지금까지 보고 있는 보건 선생님을 생각하면 어떤 감상이 들까.
아주 한참 전에 친한 애가 보건실에서 처치를 받으며 한 말이 있다.
"학교에서 쌤이 젤 부러워요."
뒷말이 예상됐지만 예의 상 "왜." 했더니 역시나 "젤 편하잖아요." 했다.
그냥 하는 말이란 걸 알아서 "나 겁나 바쁜데! 내가 하는 일 코로나부터 읊어줄까!"하고 대충 넘겼지만 여유가 없었으면 이렇게 대답했을지 모른다.
'와~ 그럼 너도 간호학과 들어가서 교직이수하고 면허 시험 보고 합격한 다음에 임용고시 합격하고 일하려는데 코로나 생겨서 아침마다 발열체크하러 매일 학교에 일찍 나오고 자가진단 잘 참여하는지 맨날 독려하고 코로나 업무 도와주는 분들 채용하고 방역물품 사서 나눠주고 코로나 증상 있는 애들 하루에 몇 십 명은 오는데 걔네 올 때마다 책임지고 일 처리하고 일주일에 수업 몇 시간씩 들어가고 코로나 증상 아닌 애들 치료하고 흡연 교육이나 프로그램 다 짜서 진행하고 학생이랑 교직원들 심폐소생술 교육하면 되겠다. 말 안 한 거 훨씬 많이 있긴 한데 힘들어서 그만할게.'
이랬으면 아이는 갑자기 입을 닫으며 생각했을 거다. 숨도 안 쉬고 말하는 게 광기 넘친다고, 괜히 말 꺼냈다고.
어떤 아이들과 어른들은 보건교사를 편한 직업으로만 본다는 걸 안다. 심지어 우리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혼자 일하고, 담임 안 맡고, 시험 문제 안 내니 좋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기분이 별로였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학교에서는 보건교사지만, 학교를 뜨는 순간 보건교사가 아니고, 학교 밖에서 우연히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다시 보건교사가 되었다가, 아이들과 헤어지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면 보건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만큼이나 많은 '나'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내'가 있는 건 당연하다. 그 사람이 보건교사는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쓸 글을 통해 천천히 설명하고 싶으나, 성질이 빠르고 급해 짧게 설명하자면
글을 쓰는 '나'이다.
그는 지금부터 보건교사로서 얻는 마음과 보건교사가 아닐 때 얻는 마음을 섞어 글을 쓸 거다. 글에서 태어난 모든 단어를 관통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비치도록 쓸 거다. 완벽하지도, 긍정적이지도, 활기차지도 않은데 계속해서 생각만 많아지는 사랑을 쓸 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듬뿍 담긴 사랑을 쓸 거라는 말이다.
* 임용 준비한 기간은 제외하고
** 로또나 연금복권 1등에 10번 당첨되는 일
*** 혹시라도 궁금한 사람을 위해 이유를 적는다. 4교시 후는 점심시간인데,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겁나 많이 오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 아이들이 처치를 받지 못한다. 간혹 선생님들께 연락이 와서 밥 먹다가 뛰쳐나가기도 한다.
****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근무시간에는 근무에만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