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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Mar 28. 2023

보건실에는 누가 살까?

2. 충격적인 선생님과 학생들


 내가 인간을 불편하게 여긴 역사는 유구해요. 지금까지 32년을 살았는데 그전부터 그랬음이 분명합니다. 아마 아빠 몸에 있을 때부터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태어나기 전 후에 만난 인간들은 늘 충격적이었어요. 저를 포함해서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충격을 말해볼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매일 아침으로 돌아갈게요.


1번은요. 친하지 않은 선생님께 업무적으로 협조를 구해야 했어요. 그래서 요청하기 3일 전부터 혼자 연기를 시작했죠.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너무 어려워서, 공손한 말투와 내용을 골라야 하거든요.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꾸 요청드려 죄송해요. 아, 죄송해요는 뺄까? 그러면 이러자. 많이 바쁘시죠. 다름 아니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이걸로 할까." 그런 식으로 혼자 연습하다가 갑자기 지쳐서 전화를 걸었어요. 감사하게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지만 얘기 도중 '불필요하게 말이 길어진' 제가 싫어졌어요. 묻지도 않으셨는데 혼자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지침 때문에요, 선생님...“ 하고 변명을 했거든요.


2번으로요. 예전에 코피가 자주 나는 학생이 있었어요. 이비인후과에서 시술을 받아봤는데 잠시만 괜찮고 똑같대요. 그때마다 보건실에서 지혈을 했는데, 평소에는 5분~10분이 지나면 멈췄던 코피가 20분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많이 흘렸던 건 아니라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코피가 원래 잘 나고 1교시밖에 안 됐는데 이 정도로 병원에 보내는 게 맞나? 보호자께서 이런 걸로 연락하냐 하시면 뭐라고 하지? 괜히 조퇴시키면서 담임 선생님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막상 보호자 불렀는데 코피가 멈춰있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안 보냈다가 혹시 잘못되면?' 2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고민을 20억 개 한 것 같아요. 고민은 고민이고, 행동은 빨라야 하니 결국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이 앞에서 결정을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게 싫다.' 작은 일을 결정하면서 이렇게 큰 결심을 해야 하다니.


3번은, 친구와 싸웠어요. 이제는 싸우지 않는 거보다 싸우고 푸는 게 건강하다는 걸 알아요.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인지 싸우는 게 피곤해졌어요. 우리는 살아온 날의 절반 이상을 알았지만 서로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에요. 특히 남들은 싸우지 않을 걸로 싸운 거 같아 슬퍼져요.


 선생님들도 이런 일상을 사시겠죠.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이 얽혀있는 굉장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을요. 그런데 저는 왜 사람들을 충격적으로 느낄까요? 이상해 보이잖아요. 그걸 들키기 싫어서 밖에서는 억지로 아닌 척을 해요. 그런 제가 가장 충격적입니다.


 그러므로 이유라도 찾도록 노력했어요. 몇 번은 나에게, 몇 번은 남에게 이유를 돌렸어요. 매일 그러고 있으니 누군가* 이유를 왜 찾냐고 그냥 네가 예민해서 그렇다고 했어요. 그 후에 억지로 생각을 안 했는데 목이 계속 꽉 막힌 느낌이었어요. 괴로워서 그냥 나도 남도 이상한 걸로 결론짓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냥 달라서 그런 거였어요. 우리는 달라서 엄청나게 충격적인 존재인 거예요.


 이 한 문장을 이유로 찾기까지 32년이 걸렸네요. 삶은 늘 문제잖아요. 알지만 지칠 때가 있어요. 삶이 아니라 문제를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저 이유를 생각해요. 정답은 아니지만 대답일 수 있는 이유를요.


 대답을 찾는 데 가장 도움이 된 존재가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충격을 받는 것조차 싫은 날에, 사람에게 쓰는 에너지를 종이에 쓰자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읽고 쓰는 거요.


 그래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인간이 썼는데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죽어보지 않았지만 죽은 거 같았어요. 왜, 죽으면 아무것도 안 들리고 움직이지 못하잖아요. 유골함 안에 혼자 조용히 어느 누구도 담기지 않은 채로 있겠죠. 어떤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죽은 것 같았어요. 그러면 책은 저자를 응축해 놓은 유골함인가? 그런 유골함을 읽게 해 주신다니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환영하고요.


 감사하고 환영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혜윤 작가의 어느 책은 제목이 '슬픈 세상의 기쁜 말'입니다. 책 이름처럼 보는 내내 슬퍼하며 웃음 지었어요. 우울과 가난과 재난이 가득 찬 슬픈 세상에서 작가는 '기쁜 말'을 찾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니까요.


 제가 생각한 슬픈 세상은 저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그 일은 해결되거나 해결되지 않는 둘 중 하나로 남을 텐데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예상할 수 있거나 없는 내일이 싫은데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지금 살아가기도 죽어가기도 하는데 죽는 거에 더 가까운 거 같네.

대체 이 안에서 어떻게 ‘기쁜 말’을 찾을 수 있는 건가요.


 그걸 찾지 못해 더 슬퍼지는 날이 오면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돌려 길고양이와 젖소, 닭과 병아리, 흙을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겨울 내 추워서 차 보네트 안에 들어가 있는 길고양이를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1년 내내 임신한 젖소를

알을 낳기 위해 발 디딜 틈 없이 닭 사이에 껴있는 닭을

필요가 없다 여겨지면 파쇄기에 들어가는 병아리를

오늘 쓴 플라스틱을 분해하지 못하는 흙을요.

그러면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던 ‘기쁜 말’이 조금은 만들어집니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우유를 덜 마시고, 닭을 덜 먹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방식으로요.

인간 때문에 죽는 존재들이 인간을 통해 산다는 말이 어찌나 기쁜지요.


 이제는 다른 ‘기쁜 말’을 찾아보려 합니다. 누워서든, 기면서든, 한 발자국 씩 걸으면서든 천천히 가보려고 해요. 정말 정말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겠지만 아직 살아있으니까요.



*내 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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