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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U Tris Aug 21. 2024

해변

축축하다

 밤이 되어버린 어느 날, 나는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다. 하늘의 별은 어째서인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가로등이나 빛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은 점점 더 깊이 침전하는 것만 같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깊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마치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핸드폰의 라이트 기능을 킨다. 완벽한 암전의 세상에서, 동그랗게 가시적으로 지각 가능한 세계로의 전환. 보이는 것은 오직 내 반경 1m 남짓. 동시에 그것은 나의 세계이다.

 라이트를 켜도, 내 세상은 조금 흐릿한 것 같다. 안개인듯하다. 짙어서 흐릿함을 넘어선, 습한 느낌이 전심을 감쌌다. 나의 세계는 축축했다. 축축한 안개를 뚫으며 걸어가려니 물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다.

 바닥의 모래는 나를 끌어내린다. 저 밑의 나락으로 나를 보내버리려는 악마의 손길이 나의 발을 감싼다. 

 그럼에도 나는 발을 내딛는다. 힘겹게 구렁텅이에서 발을 꺼내고나면 물 속에서 전진해야만한다. 나를 가로막는 안개를 뚫고 나아가야만한다. 하나의 원으로 축소된 나의 세계 속에서 전진하며, 동시에 그 세계를 앞으로 계속하며 밀어내며 전진한다.

 그렇게 움직이다보면 문뜩 드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째서 앞으로 가야만 하는가?

 그런 생각이 한 번 스치면 고민하게 된다. 나는 왜 앞으로 가는 것인가. 가야만 하는가? 안 가도 괜찮지 않을까? 잠깐만 쉬다 갈까? 아니 잠깐 앉아서 고민해볼까? 솔직히 가야될거 같지 않은데…. 그냥 여기 앉아서 기다리면 낮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때 길을 좀 보고 움직일까?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베푸는 행위는 다른 이도 베풀게 한다. 즉 관대함에는 더 큰 관대함이 따라온다.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이다. 스스로에게 관대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는 점점 더 관대하게 된다. 내가 어째서 앞으로 나아가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무엇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축소된 나의 세계속에서는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 모든 것이 너무나도 어두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짐을 지고 움직이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러다 문득, 어떠한 반짝임이 나의 시야 어딘가에서 걸렸다.

 하늘인가? 아니다. 

 가로등인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저 멀리, 아득하게도 멀리있는 곳에서 검은 생머리에 하얀 줄이 3개 그어진 검은 겉옷을 입고, 검은 바지를 입은 한 여인이 있었다. 

 누구인지 판별이 되지 않을 거리이다. 내가 본 것은 사실 내가 상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의 반짝임은 그녀의 것이 확실했다. 그 순간의 찬란함이, 그녀라는 등불이 밝혀낸 나의 길을 따라 걸어나가야한다.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나는 걸어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천천히 힘겹게, 그러나 최대한 빠르게, 그녀를 쫓아가기 위해서,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더이상 멀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여 몸을 움직인다.

 몸을 기울여 발을 모래에서 뽑아내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몸을 숙여서 안개가 나를 밀어내는 면적을 줄였다. 라이트를 앞으로 빚춰서 내가 가야하는 길을 빚췄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누구는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달했냐고. 또는 말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면 아름답지 않냐고. 그러나 나는 현실을 적어내려가는 사람이다. 이야기의 바탕은 언제나 현실, 그 현실 속에서 나의 등불이 되어주는 그녀는 이 글에서의 등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적어내려가야하는가?

 네 걸음, 다섯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손이 닿을만한 거리까지 다가온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건드리려 했다. 허나 무엇이 두려웠을까? 내가 건드렸다가 등불이 꺼지면 어떡할까 무서웠을까? 아니면 그 빛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절망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손을 뻗지 못했다. 않았다.

 다시 나의 품으로 거둔 나의 손은 더이상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누군가라도 붙잡고 싶어하는 이 손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팔을 잘라냈다.

 뚝.

 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축축한 해변가의 모래를 붉게 물들인다.

 나는 칼이 박힌 팔을 흐느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나의 길을 밝혀줄 등불을 찾기 위해서.

 아까 놓친 그 등불을 찾기 위해서일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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