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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U Tris Aug 26. 2024

별의 연주

별이 된 기사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바라본다.

 밤하늘에 떠 있는 붉고 푸른 각양각색의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은하수가 수놓은 하늘의 협곡에 도달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내가 저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이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내가 죽고 나서도, 세상이 변해 저 하늘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아름다운 밤하늘을 추억하기 위해 이 광경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푸른 언덕 위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 의자를 당겨 앉고 건반 위에 손을 올려둔다.

 그래, 저 하늘을 표현해 보자. 음악으로 만들어 기록하자.

 천천히 손을 움직여 흰건반을 누른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왼손도 건반 위에 올려 낮은음 하나를 누른다.

 묵직한 소리가 언덕을 타고 퍼졌다.

 아아, 좋구나.

 하늘 높이 떠서 반짝이는 별들을 표현하기 위해 높은 음계를 누른다.

 하늘이 있다면 그것을 받쳐주는 땅도 있기에 왼손으로 묵직한 저음을 내어 바닥을 다진다.

 나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오늘 밤의 이야기가 언덕 너머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한 사내가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읊는다.

 자신 또한 그대들에게 다가가겠다고. 자신 또한 하나의 별이 되어 함께하고 싶다고.

 그는 별이 되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왕궁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돌아다닌다.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던 그는 다양한 책을 읽어가며 한 가지 진실에 도달한다.

 ‘영웅이 되어라, 그리고 작렬한 죽음을 맞이해라. 그리하면 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내는 고민했다. 어떡하면 영웅이 될 수 있을지. 어찌하면 작렬하게 전사할 수 있을지.

 그는 왕에게 찾아갔다. 

 왕은 사내의 등장에 기뻐하며 물었다.

 무엇을 원하냐고.

 사내는 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왕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내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사의 자격을 달라고 요청한다.

 아들의 요청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두려워진 왕은 그 요청을 거절한다.

 막내이자 둘째인 아들이 처음으로 무엇을 소원했지만, 그것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왕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형에게 찾아갔다.

 훗날 나라를 이끌게 될 왕자에게 물었다.

 기사가 되려면 어찌해야 되냐고.

 형은 자신을 증명하면 된다고 했다.

 사내가 무엇을 증명해야 하냐고 묻자, 형은 고민했다.

 하나뿐인 동생이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그러나 동시에 동생의 집념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불가능을 말했다.

 동쪽 동굴에 있는 용을 죽여라. 그리하면 기사의 자격을 얻을 것이다.

 사내는 알겠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

 당황한 형은 그를 따라나서려 했지만, 사내는 이미 멀리 동쪽으로 가버린 뒤였다.

 조잡한 갑옷을 입고, 철보다 나무의 비중이 큰 방패, 어린 시절 아버지께 선물 받은 검을 들고 사내는 동굴에 들어섰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생명체를 인지한 만물의 왕, 드래곤은 끔찍한 소리를 내지르며 사내에게 외쳤다.

 꺼져라.

 그러나 사내는 담담하게 방패를 치켜들어 그 음파를 버텨냈다. 용은 불을 내지르고 앞발을 휘둘러 사내를 위협했다.

 사내는 담담하게 모든 공격을 회피하고 막아내며 끈질기게 용을 공격했다. 

 수 시간이 흐르고, 사내가 지쳐 잠시 동굴 밖으로 나와 쉬었다.

 드디어 조용해졌다고 판단한 용이 다시 잠에 들려했을 때, 사내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든 용을 향해 소리쳤다.

 일어나라, 다시 싸우겠다.

 용은 눈을 떴다.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 지쳐서 자고 있는 자신을 공격하면 쉬웠을 터인데, 어찌하여 깨웠는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용은 사내게에 물었다.

 어째서 잠든 나를 공격하지 않았는가.

 사내는 답했다.

 별이 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해선 안된다.

 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곧은 사내의 눈을 보고는 그는 자신이 다시 공격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은 다시 공격했고, 사내는 피하고 막아내고 공경했다. 제대로 된 공격은 들어가지 않았고, 사내는 지쳤다. 쉬었다 다시 용을 깨우고 공격하기를 반복, 수 일이 수개월이 되었다.

 용은 사내의 집념에 감탄했고 자신의 뿔을 내어주며 가라고 했다.

 사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것이 인정의 징표이냐 물었고,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자신보다 거대한 뿔을 질질 끌며 왕성으로 돌아갔다.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부대를 이곳저곳에 파견하던 왕과, 사내의 형, 왕자는 사내의 복귀에 환호했다. 

 그리고 사내가 그들 앞에 놓은 용의 뿔을 보고는 당황했다.

 이제 나를 기사로 임명해 주시오, 형님.

 형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사내는 왕국의 칼이 되어 누구보다 앞장서서 왕국을 지켜냈다.

 최대한 자비를 베풀며, 동시에 왕국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의 판단을 내리며 살아갔다.

 어느새 사내는 모든 기사들의 정점에 서 있었고, 왕에서 황제가 된 사내의 아버지는 황태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황제가 탄생하는 날, 동쪽 동굴에서 용이 날뛰어 마을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내는 급히 기사대를 이끌고 용을 찾아갔으나, 용은 이성을 완전히 잃고 날뛰고 있었다. 검게 변해버린 눈에는 붉은색의 무언가만이 눈동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용의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나무가 뽑혔고 건문들이 무너졌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화염은 모든 것을 말소했다.

 사내는 후퇴를 명했다. 그러나 본인만은 자리에 서 있었다.

 기사단장님은 왜 후퇴하지 않냐고 묻는 한 명의 기사에게, 그는 자신은 별이 될 날만을 기다렸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고, 홀로 용을 상대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그날 새로운 황제 앞에는 용의 반대쪽 뿔과, 용의 심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랑했던 자신의 아우의 관이 함께 있었다.

 사내의 형은 황제라는 자리에 맞게 눈문을 참고 죽은 동생을 축복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는 동생을 향해 기도했고, 그날 황국의 모든 백성이 별이 된 용사를 칭송했다.

 나는 서서히 건반에서 손을 떼었다.

 기나긴 연주의 감정을 추스르며, 피아노 위로 푸른 천을 덮었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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