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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04. 2024

'Chat GPT'도 모르는 아버지가 아픈 이유

아이와의 관계가 아프면, 부모의 몸은 병듭니다.

아이가 주말에 신나게 놀다가 월요일 아침만 되면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한 적이 있나요?

우리는 꾀병이라고 치부하지만, 사실 아이는 진짜 아픈 건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스트레스는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두통, 배탈, 근육통, 발열, 구토 등 실제로 몸에 병이 납니다.      

마음이 병들면, 몸으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부모인 나는 어떨까요?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달래도 안 되고 혼내도 안 되고 도무지 방법이 없다며 무기력해합니다.     

 

GPT는 답을 알고 있을까요?          

요즘 유행하는 ChatGPT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봤는데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욕을 한다면?      
         
챗 GPT가 알려주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욕했을 때 해결 방법'


챗 GPT가 한 대답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다 맞는 말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욕을 한 이유를 파악해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아들의 분노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죠.


그런데.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끌어모아 정답을 말해준다는 GPT도 모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자녀에게 욕을 들은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아들에게 상처를 입은 아버지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GPT가 알려준 대로 아들을 훈육하고, 아들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고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죠.


아들의 공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 입은 아버지의 마음부터 어루만져야 합니다.


부모도 사람입니다.

심리적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뜻이죠.      


아들에게 심한 말을 듣고 정신적 충격을 입으면, 아버지의 심리는 부정적 감정들로 가득 찹니다.

'심리적 여백'이 없을 정도로 ‘분노, 슬픔, 좌절, 열등감, 두려움, 우울’ 등이 빽빽하게 정신을 점령해 버립니다.      

머리와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아버지에게 훈육이나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같은 조언은 들리지 않을 겁니다.      

GPT는 모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지식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버지는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과 약이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잘못 키운 게 아니냐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더 이상 아이는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습니다. 또래 집단의 문화에 훨씬 더 매료되기 때문이죠.

그 또래 집단이 어떤가에 따라 아이의 성격과 태도도 변화합니다. 물론 그 방향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요.      


아들을 잘못 키웠다고 해서 아들에게 욕을 듣는 게 당연한 건 아닙니다.


아버지가 화와 슬픔을 견뎌내느라 몸에 병이 나겠지요. 아이를 볼 때마다 그때의 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를 테니까요.


정신과 의사인 마스다 유스케는 이럴 때 ‘튜닝’과 ‘프루닝’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튜닝'은 자주 사용하는 중요한 정보를 떠올려서 잘 기억나게 하는 작업이고,
'프루닝'은 반대로 쓸모없는 정보를 정리해서 삭제하는 작업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한 욕을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모욕적인 순간을 재경험하며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죠.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프루닝, 즉 제거해야 할 정보를 오히려 튜닝, 즉 재생하고 있으니 내면의 상처는 깊어지고 몸에 병이 나타납니다.   

  아이와 있으면 이유 없이 몸이 아플 때가 있나요?     
 

아이와의 관계가 아픈 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아이와의 나쁜 기억은 프루닝 해서 정리하고,
좋은 기억을 튜닝하며 상기하는 겁니다.      

아무리 아이와의 사이가 멀어져도 아이와의 행복한 추억은 남아있습니다.

아이와의 즐거웠던 기억엔 먼지가 자욱하게 앉아있겠지만 기억의 저편에서 가져와 자꾸 떠올려보세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아이에게 받은 아픔은 조용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례에서 욕을 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똑같이 험악한 말을 하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들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는커녕 아직 자신보다 힘이 센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분노에 찬 계획만 세웠을 겁니다.      


자녀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음번엔 어떻게 대처할지 배움의 기회로 삼으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계의 물꼬가 트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이 가진 힘으로 자녀를 처벌하면, 아이는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모의 상한 마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벌을 받지 않을 방법만 고민할 겁니다.    

  

아버지는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과의 사건을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 화내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왜 욕을 할 정도로 아이가 화가 났을까. 욕으로 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정도로 내가 아이를 이해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가 유독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빠하는 부분은 어떤 걸까.’     


아들은 언젠가 알게 될 겁니다.

아버지가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한 노력을, 그리고 그 노력을 떠받치고 있는 아들을 향한 사랑을.   

  

아이와 있을 때 몸이 자주 아프다면, 아이와의 관계가 병든 건 아닌지 점검해 보세요.


아이와의 사이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에 빈틈없이 채워져 스트레스를 다루지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도움을 청하는 마음의 목소리를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 채, 부모로서의 역할만 해내려다 보면, 나의 내면은 회복을 포기하고 몸져눕게 됩니다.

끙끙 앓는 마음의 병이 몸으로 전염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거죠.    

이유 없이 몸이 자주 아프다면, 아이와의 사이가 어떤지 확인해 보세요.

   

챗 GPT도 아들에게 욕을 들은 아버지가 왜 몸이 아픈지는 알지 못합니다. 빨리빨리 아들과의 문제만 해결하라고 할 뿐이죠.


하지만 아들과 갈등을 해결하기에 앞서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포기하는 능력'을 발휘해서 나쁜 기억은 빨리 삭제하고 좋은 기억을 소환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냐고요? 아니요. 부모인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섭니다.    

  

아이와의 사이가 힘들어 마음에서 몸까지 관통하는 상처가 존재한다면,
아이와 나눈 긍정적인 경험으로 코팅해서 나를 보호해 주세요.      

그래야 부모도 가시처럼 찌르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병들지 않고,
좋은 것들을 채울 마음의 여백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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