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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07. 2024

'아버지의 블루스'

부모자녀관계에서 '아버지의 역할' 이해하기

아버지는 텔레비전이 싫다고 하셨어.


아버지는 텔레비전 혐오자였습니다.

혐오란 자신을 오염시키는 물질에 대한 회피 반응인데, 아마 텔레비전이 아버지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요?

다행히 다른 가족의 텔레비전 시청권을 침해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있을 때면 재밌는 만화영화를 보는 것도 눈치가 보였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텔레비전에선 유독 아버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마치 저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모종의 계약을 한 것처럼 이런 아버지, 저런 아버지들이 시간과 공간을 나눠 등장했죠.


그중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가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저의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없었습니다.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어릴 적 친구를 속이려던 아버지, 아이를 두고 자살한 아버지, 아내의 우울증을 이유로 이혼한 아버지. 청소년인 아들과 딸이 혼전임신으로 결혼하겠다고 선포하자 마른 장작에 불붙듯 분노를 태우던 아버지들.      


아마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모습을 자신의 자부심의 3할쯤 분배해 놓던 아버지를 향해 저는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넘치는데 왜 보지 말라는 거야.’라고 반항하면서, 동시에 ‘텔레비전 보지 말라고 하는 아버지가 드라마 속 저런 아버지보단 낫네.’라며 수많은 아버지들 중 나의 아버지의 비교 우위를 점치고 있었던 걸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며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드라마 속 아버지들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몇 세대를 넘어 노예로 살아야 했던 흑인의 고된 삶을 위로하는 노래라는 '블루스'가 나의 아버지와 드라마의 아버지들을 위해 잔잔히 펼쳐지는 동안, 아버지를 상실한 슬픔과 아직 완전히 잃지 않은 기억으로 인한 그리움이 어루만져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세요?     


“글쎄요. 별로......”     


저 역시 아버지와의 기억은 빠르게 흐릿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갇히곤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부모자녀관계에서 아버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연구는 어머니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원시시대부터 엄마에게 자녀의 양육을 맡기고 사냥을 나가야 했던 아버지들은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보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시급 했을 테니까요.     


아이와 만나는 시간이 짧으니 그 짧은 만남 속에 아버지가 아이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는 아버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별로 없지요.


부모는 아이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고 아버지의 태도와 가치, 행동 등이 아이에게 큰 파급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거죠.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지고 사회활동에 많은 에너지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아버지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양육의 무게를 강요해서는 안 되지만(맞벌이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래도 아이와의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위해 아버지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그림자처럼 한쪽 구석에 홀로 있던 아버지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죠.


부모와 자녀 관계는 상호적이니까요.

부모만 자녀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부모에게 애정과 존경을 건네야 ‘부모자녀관계’가 수립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되었나요?     


일에 지쳐 활기 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놀아달라는 아이를 밀어내진 않았나요?


경제적 책임을 진다는 이유로 아이의 양육을 아내에게 전가하진 않았나요?


아이 육아나 다른 문제로 아내와 자주 다투며 서로 소원해져서 아이가 부모의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각조차 못하진 않았나요?


아버지가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 본 적은 있나요?     


만약 전부 ‘NO’라는 대답을 한다면, 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테고, 그 이유가 자기에게 있다고 믿을 겁니다.      


자기가 무언가 잘못해서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엄마와 싸운다고 받아들이는 거죠.      


아이가 아버지에 대해 더 오해하기 전에, 아이에게 말해주세요.      

“너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야. 아빠는 널 사랑하고,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아.”     


나는 어떤 아버지 유형일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연구한 폴터는 아버지의 유형을 5가지로 구분했는데요.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나의 아버지는 어떤 유형에 속했는지 확인하며, 아버지와 자녀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먼저 ‘성취지상주의형 아버지’입니다.


이 유형에 속하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외적인 모습을 중시합니다.

내적인 감정과 생각보다 외모와 성공에 집착하며 자녀에게 자신의 가치를 주입시키죠.


놀이터에 갈 때도 아이의 옷을 신경 쓰고, 사람들이 아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촉각을 세웁니다.

잘난 외모, 좋은 성적, 명문대학, 심지어 자녀의 결혼 상대의 조건도 외모와 성취에 기준을 둡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자녀는 겉모습에 신경을 쓰면서 정작 내면은 돌보지 못합니다. 작은 일에도 타격을 입고 수치심을 느끼며 움츠러들죠.


아버지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돈, 지위, 명예 등을 쫓지만, 정작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시한폭탄형 아버지’인데요.


이름만 들어도 어떤 아버지인지 아시겠죠?


이 유형의 아버지는 사소한 자극에도 감정이 폭발하여 가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아이는 두 가지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첫째는 ‘애어른’처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버지의 기분과 생각을 간파해서 맞춰주는 사람이 되는 거죠.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상대의 감정이 자신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욕구는 억누른 채 남의 기분만 맞춰줍니다.

둘째는 아버지와 같은 ‘정서적으로 미숙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세상을 향해 분노를 토해내죠.          

 

세 번째는 ‘수동형 아버지’입니다. 


이 유형의 아버지는 조용한 그림자처럼 움직입니다.


가족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며 주변을 맴돌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아이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들어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의 영역이라고 믿기에 적극적으로 육아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겉으로 아이에게 무관심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아버지를 둔 자녀는 쉽게 우울감을 느낍니다.


아버지와의 정서적 접촉이 많지 않으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서운함도 동시에 느끼죠. 이런 아이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자신의ㅠ미래에 대해 잘 안 될 거라는 부정적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해 어떤 일을 끝까지 이뤄내기 위한 내적인 추진력이 약하니까요.


네 번째는 ‘부재형 아버지’인데요.


이 유형의 아버지는 실제로 아이를 버리고 떠나거나 함께 살아도 아이를 거부하며 가족과의 관계를 등한시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부모에게 거부당하는 상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아이의 정신은 붕괴되고 신체적인 질병이 생기기도 하죠.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일조차 없으니 아이는 아버지가 낯설고 불편합니다.


아버지가 있는데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애도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도 벅찬데, 스스로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내느라 과도한 책임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죠.       


그런데 4가지 유형에 속하는 아버지들은 그런 유형이 될 수밖에 없던 자신만의 역사가 있기도 합니다.


그들 역시 성취를 중시하는 아버지나, 아무 때나 폭발하는 아버지, 무관심했던 아버지, 무책임했던 아버지의 그늘 속에 자라며,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온전한 빛을 보지 못했기에,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마지막 ‘배려하는 멘토형 아버지’는 다릅니다.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이죠.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이해하며 자녀와 보내는 시간에 즐겁게 참여하고, 아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함으로써 아이의 건전한 발달을 돕고, 일관성 있게 아이와 정서적으로 연결을 시도하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아이가 세상에서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믿게 만듭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이는 한 마디로 무서울 게 없습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두 팔을 벌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모든 일에 도전합니다.


설사 넘어져도 아버지와의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툴툴 털고 일어나죠.

아이에겐 상처 입은 과거의 짐이 없으니까요. 

내면에 부정적인 정서와 생각을 채우는 대신, 자신이 가진 긍정적 자질인 자부심, 공감, 용기, 안정감, 신뢰, 희망 등을 담고 있죠.  

'이 세상에서 나의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은 없어.'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만약 나의 아이가 이런 신념을 갖고 있다면, 아이의 삶은 행복할 겁니다.     


언젠가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텔레비전에서 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였죠.

할머니께서 제 옆에 바짝 다가오시더니 목소리를 낮춰 이러시는 겁니다.


“네 아버지는 저런 재미도 모르고 사니 참 불쌍하다. 그치?”


저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렸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밖에 나갔는지조차 몰랐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바둑이나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법인데, 왜 아버지 취향은 존중하지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며 괴짜 취급을 했던 것일까요.


아버지의 유형을 알아보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도 ‘배려하는 멘토형의 부모’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충분히 좋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알지도 배우지도 못한 아버지들에게 받은 무겁고 낡은 외투를 벗어버리고 내가 선택한 멋진 옷을 입기 위해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거죠.      


아버지가 나에게 준 수치심을 나와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약점을 이해하는 기회로 삼고, 아버지로 인해 가까이하게 된 불안을 삶의 위기를 준비하는 성실함으로 바꾸고,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의심이 불필요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철저한 태도가 되게 하고, 내 안에 부재하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생긴 분노를 역경을 이겨내는 열정으로 변화시킨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나의 아버지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은 짐을 내려놓지 못해
나에게 물려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어두운 유산을 거절해도 됩니다.
그래야 나의 아이에게 빛나는 유산을 줄 수 있으니까요.


참고문헌     

Poulter, S. B. (2018).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요소 아버지(송종용 역). 경기: 비전북.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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