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물이 된 '아이와의 대화'를 회복하는 법
언젠가 아이들 입에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가겠죠?
청소년기 아이들은 의사표현을 할 때, 내용을 설명하기보다 '음성이나 체언적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즉 내용을 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압축해서 나타내는 '명사, 대명사, 수사'를 이용해서 의사를 표현한다는 겁니다.
"너 오늘 왜 학원 안 갔어?"
"아, 몰라."
“원래 학원 가려고 했는데 수정이가 무슨 일 있다고 해서 얘기 듣느라고 늦어서 못 갔어.”라 거나 “현태가 자기 생일이라고 게임하러 가자고 해서 한 판만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못 갔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됐어. 몰라. 알았어. 이따, 헐, 대박’ 등등
음성, 명사, 대명사, 수사 등으로 이뤄진 문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아이의 말에 대한 해석은 부모의 몫이자 역량입니다.
부모의 해독기가 얼마나 좋은 가에 따라 아이의 마음을 보다 정확히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부모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뭐가 됐다는 건지, 이따는 언제라는 건지, 아 진짜~는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 건지' 문제를 풀 듯 아이만의 기호와 상징을 풀어내야 하지요.
가족치료전문가인 사티어는 가족 간에 발생하는 네 가지 절름발이 의사소통의 방식을 구분했는데요.
구체적으로, ‘회유형, 비난형, 계산형, 혼란형’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떤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먼저, ‘회유형’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며 상대의 눈치를 보며 대화하는 유형입니다. “알아서 해. 네 마음대로 해.”라며 결정과 책임을 아이에게 맡기는 부모의 예를 들 수 있겠네요.
‘비판형’은 ‘모든 것이 네 탓’이라며 갈등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면서 대화를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부모나 자녀나 상대의 약점과 잘못은 확대하고 장점과 능력은 과소평가하니 서로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가 없죠.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부재하는 가정의 대표적인 소통 방식입니다.
‘계산형’은 감정 없이 정확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대화하려는 유형입니다.
흔히 말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냉정해 보이는 유형의 의사소통방식이죠. 이 유형은 부모의 성격이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감정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를 싫어할 경우에 자주 나타납니다. 아이와의 대화도 간결하게 할 말만 하죠. 대화 중에 감정을 이입해서 공감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정해진 답만 말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혼란형’은 말의 논리나 목적이 없이 어수선하게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상대의 질문이나 반응과 상관없이 대화를 이어갑니다. 부모가 한참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아이가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을 하거나 오후에 있는 친구와 약속에 대해 말하는 등 둘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의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죠.
‘침묵형’은 말 그대로 언어적 표현 대신 ‘표정이나 행동, 한숨’ 등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유형입니다. 특히 권위적인 아버지들이 이 침묵형을 선호하죠.
그래도 ‘회유형이나 비판형, 계산형, 혼란형’은 말을 하니 대화를 한다는 느낌은 드는데, 침묵형은 말에 자물쇠를 걸어 놓으니 소통 자체가 어렵습니다.
침묵하는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책임과 잘못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체벌인지 알지 못한 채 말이죠.
부모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은 어떤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대화를 통해 이해해야 하는데, 부모가 그 과정을 안내하지 않으면 아이는 대화의 필요성은 인지하지 못합니다.
‘말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도구일 뿐’이라고 여기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도 침묵형이 됩니다.
집안에 소통은 사라지고 대화는 오래된 유물이 되는 거죠.
'우리 가족은 아주 옛날 옛적에 대화란 걸 한 적이 있었다.'
저는 이 ‘침묵형’ 가족을 위해 4단계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데요.
아이의 어릴 적을 회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말을 주고받았는지.
청소년기 아이는 ‘내적 말’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인지심리학자인 비고츠키는 말 발달이 이뤄지는 2-3세에는 ‘외적 말’이 급격히 발달한다고 설명합니다. 외부로 말을 꺼내는 거죠. 이 시기엔 말을 하며 사고가 발달하므로, 쉴 새 없이 ‘외적 말’을 하게 됩니다.
이후 3-4세가 되면 ‘혼잣말’이 나타나는데요. 성인 중에도 혼잣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죠. 혼잣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과 조절하고 통제하기 위해섭니다.
“그래. 오늘은 이것까지만 먹는 거야. 더 먹으면 안 돼!”
다이어트와 같이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면 혼잣말이 저절로 나오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속으로 하는 말인 ‘내적 말’이 나타납니다. 비고츠키는 이를 ‘생각인 동시에 말’이라고 표현했죠. 내적인 말을 통해 우리는 추상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청소년기 아이는 ‘외적 말’은 줄어들지만 ‘내적 말’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왜 태어났나. 세상을 왜 이런 곳인가. 친구는 왜 필요할까. 우리 부모는 왜 날 낳았을까’ 등 복잡한 생각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련합니다.
그러니, 아이의 안에 잔뜩 담긴 말을 조금씩 밖으로 꺼내는 연습을 시도하기 위해 1단계에선 ‘희망’부터 갖아야 합니다.
인도의 의사 마단 카타리아는 '하하 순간'을 발견했는데요.
사람들을 모아놓고 머릿속으로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고 상상하고 웃어보라고 하자 실제로 이들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겁니다.
재밌는 이야기나 사진이나 영상 등을 보면서 유머를 통해 같이 웃다 보면 긴장이 풀어지고 좋은 느낌이 들면서 대화의 벽을 무너뜨릴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웃음을 나눈 경험만으로 ‘우리도 뭔가를 공유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가 더 커집니다.
대화의 목적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거죠. 그러면서 가족으로서의 결속력을 다지고 서로의 꿈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우리는 하나’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서로 얼굴 보며 잠깐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도무지 말을 꺼내기가 어색하다면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해 보는 겁니다.
거기에 나온 아버지, 어머니, 아이의 대사를 연기하는 거죠. 물론 처음에는 잘 안 될 겁니다. 그래서 한 문장 정도로 시작해도 됩니다.
영화 ‘프리퀀시’에 나온 대사인데요. 어떤 상황이든 적용해 보세요.
밥을 먹다 아이가 버섯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같지 먹자. 둘이 하면 해낼 수 있어. 사나이 배짱, 몰라?”라고 외치던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같이 가자. 둘이 가면 갈 수 있어. 사나이 배짱, 몰라?”라고 말해보는 거죠.
희화화하긴 했지만, 때로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를 적어놓고 실제로 해보는 거죠.
아이는 부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잠시일 뿐입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부모보다 오글거리고 상황에 맞지 않더라도 말을 건네는 부모가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느낄 테니까요.
아이가 첫 발을 내딛을 때 얼마나 긴장되고 두려운지 아시죠?
오랫동안 침묵했던 가족이 대화를 시작하려면 걸음마부터 해야 합니다.
가볍고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주제로 짧고 간단하게 대화를 하는 거죠.
일상에 대한 대화가 좋은데 아이 성적이나 부모의 음주 습관이나 새로 사고 싶은 물건 등 지적이나 비난이나 회유와 같은 부적절한 의사소통이 일어날 주제들은 꺼내지 말고 ‘날씨, 점심 메뉴, 길 가다 본 강아지’ 등 평가나 판단 없이 무조건적으로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때 아이가 한 말을 반복하며 아이의 입장에 서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점심에 급식으로 돈가스 나왔는데 진짜 맛없었어.”
“오늘 점심에 돈가스를 먹었는데 맛이 없었구나.”
오늘 한 발 내디뎠다면 내일은 한 발 더 내딛고 그렇게 천천히 가족의 호흡에 맞춰 진행하면 됩니다.
어쩌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주제로 시작했는데 말싸움으로 번지거나 또 입을 닫은 채 불편한 음소거를 견뎌야 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 다시 1단계로 돌아가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길 싫어합니다. 우리가 한 노력이 헛되다고 믿게 되니까요.
하지만 1단계나 2단계 혹은 3단계로 돌아간다고 부질없는 수고를 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요령이 생기고 버텨낼 힘도 얻게 되니까요.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와의 관계엔 언제나 희망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눈 지가 오래돼 둘 사이에 먼지가 쌓였다고요?
지금이라도 침묵의 자물쇠를 깨기 위한 4단계를 적용해 보세요.
부모의 용기와 도전을 보며
아이도 살포시 '마음의 말'을 꺼내놓을지도 모르니까요.
참고문헌
Satir, V. (2023).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강유리 역). 서울:(주)콘텐츠그룹 포레스트.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2015).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서울: 살림터.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