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굿핏(Good fit)을 위해 ‘가정원칙’ 적용하기
길을 가다 곰을 만나면, 곰을 보자 공포를 느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는 걸까요?
아니면, 곰을 보자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공포를 느끼게 되는 걸까요?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감정이란 우리가 자신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결과물’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요.
다시 말해,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인해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거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와 관련된 감정이 일어나게 되는데, 유사한 행동을 반복할수록 감정도 강화된다는 겁니다.
왜 ‘가정원칙’이냐고요?
만약 ‘날씬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럼,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건강한 음식을 먹고, 간식을 줄이고, 운동을 해야겠죠.
이러한 행동을 할수록 ‘나는 날씬해지고 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과 자신감, 즐거움, 만족' 등과 같은 감정이 생깁니다.
‘가정원칙’에 따르면,
아이와 좋은 사이가 되고 싶다면, 좋은 관계인 척 행동하라는 거죠.
그렇다면 아이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행동이 어떤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겠네요.
아이에게 화를 많이 내세요?
'가정원칙'에 의하면, 부모의 분노라는 감정은 행동에 의해 유발되므로, 행동을 조절하면 분노라는 감정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건데요.
프로이트는 우리의 무의식 속 충동을 억압하다 보면, 결국 외부로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에,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죠.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입은 상처로 인한 분노를 억누르면, 공격적인 말이나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심리학자인 부시먼의 실험을 보면 프로이트의 주장이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부시면은 신학교 학생들에게 과제에 대한 나쁜 평가를 받게 한 후, 희귀암에 걸린 한 여성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게 했습니다.
그런 뒤,
한 집단에게는 희귀암에 걸린 여성을 위해 5분 동안 기도를 하게 했고, 다른 집단은 마음속으로 희귀암에 걸린 여성을 생각하라고만 했는데, 그 결과 기도를 한 학생들의 분노 지수가 더 낮게 나온 겁니다.
과제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으로 기분이 나빠진 학생들이 '마치 분노를 느끼지 않는 척'하며 차분하게 기도를 하자, 화가 가라앉으면서 편안한 감정이 생겨난 거죠.
와이즈먼은 화를 표출하는 것은 분노를 조절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근육을 이완시키고 마음을 빨리 진정시키는 행동을 훈련함으로써, 단계별로 분노를 보다 약한 강도의 감정으로 둔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호흡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행동 등을 통해 분노라는 감정의 밀도는 낮추고, 긍정적인 감정을 채워 넣는 겁니다.
아이에게 짜증이나 화가 났을 때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내며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멈추고, 잠시 다른 행동으로 전환하면 새로운 감정이 만들어진다니, 한번 해볼 만하죠?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속이 시원했나요? 아니면 더 기분이 나빠졌나요?
화를 낸 후 기분이 더 안 좋아져서 폭식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속풀이 한 적 없으세요?
분노를 표출하면 오히려 더 우울한 기분에 빠집니다.
혹시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거부하는 이유가 아이의 '기질이나 성격, 능력'과 같은 내부적 요인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가요.
한 마디로 아이가 태어나길 까다롭게 태어나고 성격마저도 못됐으며, 부모의 말을 잘 새길 기억력조차 없어서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아니면, 아이가 어울리는 친구들의 성향이나 아이가 속한 사회의 문화, 사춘기라는 발달적 특성으로 인해 부모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아이가 지금 내가 말한 대로 하지 않는 게, 앞으로 내가 말하는 모든 요청을 부정하고 무시한다는 뜻일까요?
오늘 7시까지 들어오라는 요구에 싫다는 아이의 대답이 앞으로 매일 늦게 오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겁니다.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전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와 나쁜 관계를 유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 불러온 부정적 예측일 뿐입니다.
‘가정원칙’을 떠올려 보세요.
그러한 예측은 내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다그치며 아이와 말다툼을 했던 반복된 행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죠.
나쁜 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으니, 나쁜 감정이 생겨 나쁜 관계가 되풀이되는 겁니다.
앞에서 설명한 '날씬한 사람'인척 하면 자신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요.
결국 우리가 화를 내는 행동을 반복하는 건, 그러한 행동을 바꾸기 위한 '다른 행동'을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인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제 능력보다 과장되게 자신을 인식하는 ‘긍정적 착각’을 하는데요.
자신을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 사람들 중 쓰레기를 버리고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죠.
인간은 자신의 믿음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진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은 부조화가 발생하는 이유는 자기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 자기’와 ‘실제의 자기’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나는 ‘차별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는 아이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 말에 귀 기울이는 아이에게 더 잘해주고 있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모상은 현실의 나와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상적 자기'와 '실제 자기' 간의 간극이 클수록 부모역할을 잘 해낼 거라는 효능감이 적어지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는 부모'로서의 행동이 아닌 '차별하는 부모'로서의 행동이 강화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당연히 불안이나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생각이 행동을 만든다는 믿음 대신, 나의 행동으로 사고와 감정을 바꾼다고 믿어보세요.
그러기 위해선 행동부터 변화시켜야겠죠?
혹시 염력이 있으세요?
어떻게 부모가 아이 마음을 다 알까요? 내가 낳은 자식이라서요?
아이에게 사실을 묻지도 않고 초능력을 발휘해 사건의 전말을 짐작해서 아이를 추궁하면 아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려 하지 말고,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세요.
듣고 싶지 않아도 듣는 척이라도 하면, 그런 행동으로 인해 아이를 신뢰하는 감정이 생기니까요.
행동이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말씀드렸죠?
화를 내는 순간,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가끔 과도한 감정에는 보톡스를 맞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감정을 분출한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분노로 인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행동으로 바꿔보세요.
절대 화를 낸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행동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더니,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리면서 처벌과 보상을 이용하는 부모들이 많은데요.
사실 부모의 물질적 보상은 아이에게 적절한 동기를 유발하지 않아요.
무슨 말이냐면,
부모는 성적이 오르면 아이패드를 사준다고 하고 학원에 빠지지 않으면 게임 시간을 늘려준다고 하죠.
아이패드를 갖고 게임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가서 자더라도 학원에 가고 1등이라도 올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런데 부모가 또 제안을 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가면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정말 빅딜이죠?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자동차를 얻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할까요?
아이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지루하고 어려운 일을 할 때만 나한테 뭔가를 해줬는데, 자동차를 사주겠다니, 도대체 그 대학이 얼마나 가기 힘들다는 거야? 차라리 자동차 안 받고 말지. 그건 못해!’
아이는 부모가 정해놓은 대학은 아예 꿈도 안 꿀지도 모릅니다.
싫고 힘든 일에 대한 물질적 보상은 행동을 강화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포기하게 하죠.
아이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어떤 일을 이뤄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내적인 동기를 유발합니다.
그러니 물질적 보상을 내걸고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을 통해 자신의 노력을 평가받게 되면, 아이는 돈과 물건으로 정신적인 가치의 값을 매기게 됩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나한테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평가하게 되고, 대학에 가는 것도 이곳에 입학하면 어느 정도의 돈과 명예를 얻을지부터 가늠하게 되죠.
우리는 아이의 내면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정작 행동에는 그러한 믿음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신념마저 속이면서 실제는 ‘마음이 단단한 아이’가 아니라 ‘좋은 외모와 능력을 가진 아이’를 이상적이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그래서 물질적 보상으로 아이의 행동을 내 마음대로 하려 하고, 아이가 내 뜻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아이의 마음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함부로 염탐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아이와 좋은 사이가 되고 싶으세요?
그럼, 먼저 '좋은 척'부터 해보세요.
'가정원칙'에 따라 이렇게 척하다 보면,
어느새 '척'이 아닌 아이와 '진짜 좋은 사이'가 되어 있을 거예요.
참고문헌
Wiseman, R. (2021).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박세연 역). 경기: 웅진지식하우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