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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15. 2024

'안정 애착'이 아니라고요?

‘불안정 애착’은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안정 애착이 아니래요."

 

울먹거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는 출산 후 갑상선암에 걸려 투병을 하면서도, 행여 아이의 애착에 문제가 생길까 봐 손에서 육아서를 놓지 않았던 엄마입니다.      


"그런데, 애착이 뭔가요?"

"애착이요? 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랑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그런 거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요?


'애착=엄마에 대한 아이의 사랑'이 맞을까요?     


먼저, 애착행동'과 '양육행동'을 구분해야 합니다.


애착 개념에 대해 이해하려면, 애착이론의 창시자인 볼비가 왜 엄마와 아이 사이의 애착행동에 관심을 가졌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볼비는 동물의 행동을 분석하며 애착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는데요.      


거의 대부분의 종들에서 새끼는 어미 근처에 가까이 머물려고 하는데, 새끼가 멀어지면 어미가 소리를 내서 새끼를 부르고 새끼는 어미의 소리를 듣고 가까이 갑니다.      


볼비는 새끼가 어미 옆에 붙어있으려는 행동을 ‘애착행동(attachment behavior)’이라고 부릅니다. 즉, 애착행동은 새끼가 어미에게 보이는 행동인 거죠.
반대로 새끼의 '애착행동'에 대응하는 어미의 행동을 ‘양육행동(caregiving behavior)’이라고 합니다(Bowlby, 2019).

다시 말해, ‘애착행동’은 아이가 엄마(혹은 양육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행동을 뜻하고, ‘양육행동’은 아이의 애착행동에 따라 엄마(혹은 양육자)가 아이를 돌보고 보살피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아이는 왜 ‘애착행동’을 보일까요?     


볼비는 아이가 애착행동을 보이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포식동물로부터의 보호, 즉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받기 위해' 아이가 엄마의 옆에 있으려는 것이고,

둘째는 '생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학습할 기회를 엄마로부터 얻기 위해' 애착행동을 보인다는 겁니다.      


혹시 여기서 기존에 알고 있던 '애착'의 개념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드셨나요?     


볼비가 말하는 아이의 ‘애착행동’은 아이가 생존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인 겁니다.

단순히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접촉하는 ‘애착행동’을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물론 안정적인 애착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엄마에게 강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느낍니다.   

    

하지만 볼비가 말한 애착행동의 두 가지 이유를 기억해 보세요.


기본적으로 아이는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험을 하기 위해 엄마(혹은 양육자)와 애착을 형성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엄마가 아니라도 아이는 다른 대상에게 ‘애착행동’, 즉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대상에게 다가가서 접촉하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볼비는 “누군가 어떤 아이에게 자기 자식을 기르는 것처럼 대해주면, 이 아이는 그 사람을 자신의 생모를 대하듯 대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Bowlby, 2019).      


아이는 엄마가 아니라도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등 보살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겐 ‘애착행동’을 보이는 거죠.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될까요?     


볼비는 생후 첫해에 아이의 애착행동이 어떻게 발달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준거를 사용했는데요.

첫 번째는 엄마가 아이를 떠날 때의 반응이고, 두 번째는 엄마가 되돌아올 때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안정, 불안정-회피, 불안정-저항’과 같은 애착유형은 에인스워스가 이 두 가지의 준거를 사용해서 아이들이 엄마와 헤어질 때와 다시 만날 때의 반응을 실험한 결과에서 나온 거죠. 아마 워낙 유명한 실험이라 대부분 아실 겁니다.      


아이와 엄마는 놀잇감이 있는 실험실에서 같이 있다가 잠시 후 엄마가 나가는데 이때 아이가 보이는 반응을 관찰하죠. 그리고 엄마가 다시 돌아올 때 아이가 엄마에게 보이는 반응을 분석합니다.      
엄마를 안전기지라 믿는 아이는 엄마를 향해 다가가서 엄마에게 안기며 안정감을 경험하고,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는 아이는 엄마를 외면하거나 엄마에게 다가갔다가 갑자기 밀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접근하려는 ‘애착행동’은 보통 생후 1년에 동안 가장 활발히 발달하는데, 이때 엄마의 곁에 머무는 건 아이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엄마와 ‘안정 애착’을 형성한다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기지인 엄마를 믿고 엄마 곁에서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학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지, 단순히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거죠.  


만약 아이가 '불안정 애착행동'을 보인다면, 아이가 위험해 처했을 때, 엄마(혹은 양육자)가 자신을 기다리며 안전기지가 되어줄 거라는 믿음이 부족하고, 엄마(혹은 양육자)가 생존에 필요한 경험을 충분히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애착행동’은 아이가 엄마에게 보이는 반응이지, 엄마가 아이에게 보이는 반응이 아닙니다. 때로는 엄마가 동일한 양육행동을 보여도 아이의 기질에 따라 안정적인 애착행동을 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엄마가 똑같은 방식으로 형제에게 상호작용을 했는데, 첫째는 순한 기질에 건강한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어서 안정적인 ‘애착행동’을 보이고, 둘째는 까다로운 기질에 만성질환이나 질병을 앓았다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말러와 파인, 버그만이 생애 초기 양육자인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웬디라는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돌봄을 충분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과민성으로 인해 엄마에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엄마와 분리되는 상황에서 강하게 저항하는 등 불안정한 애착행동을 보였습니다(말러, 파인, 버그만, 1997).


그렇다면, 아이의 ‘안정 애착’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볼비와 에인스워스는 엄마의 ‘양육행동’이 아이의 ‘애착행동’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에인스워스는 다음과 같이 엄마의 ‘양육행동’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제시했는데요.       

        


첫째, 아이가 태어난 후 6개월 동안, 아이와 엄마 사이에 잦은 그리고 계속된 신체 접촉과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안아줌으로써 아이를 위로하고 달래는 엄마의 능력은 어떠한가?     


둘째, 아이가 원하는 것을 요청할 때 신호에 대한 민감한 엄마의 반응과 아이의 욕구를 적절하게 수용하기 위한 엄마는 능력은 어떠한가?     


셋째,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자발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아이의 요구에 맞게 조절된 환경을 제공하는 엄마의 능력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를 통해 엄마의 ‘양육행동’이 적합한지 평가한다는 겁니다.

엄마가 적절한 ‘양육행동’을 보이면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행동’을 보인다는 거죠.   

   

사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면 자책을 하곤 합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아이가 불안정 애착을 맺고 있나? 아이가 앞으로도 불안정 애착행동을 보이면 어쩌지?'          


그렇다면 생애 초기에 형성한 '애착'은 평생 변하지 않는 걸까요?     


볼비는 생애 초기에 형성된 애착행동은 일생 동안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아이가 엄마와 안정 애착을 형성했다고 해서 아빠와도 안정 애착을 보이는 건 아니며, 반대로 엄마와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지만, 아빠와 안정 애착을 맺는 경우도 있다고 밝힙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엄마와는 안정 애착을 이뤘지만, 아빠와는 불안정 애착을 맺는다면, 아이의 어떤 '애착 유형'을 평생 유지하게 될까요?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합니다.


에인스워스는 엄마와의 애착이 불안정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애착도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볼비의 연구대로 엄마와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가 아빠와는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면, 엄마와의 애착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모순이 있는 거니까요.  

    

이와 관련해서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해리스는 발달심리학자인 램과 애쉬가 내린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통해, 엄마와 이룬 애착 유형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된다는 에인스워스의 의견을 반박합니다.      


엄마와 유아 간 애착의 질이 이후 또래 사이에서의 사회적 능력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계속 있어왔지만,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근거는 거의 없다(Lamb, Nash, 1989).     


아이가 엄마와 안정 애착을 형성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무조건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죠. 엄마와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안정적인 애착행동만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의 생존이 걸린 ‘애착행동’은 분명 아이의 삶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엄마와 아빠가 민감하고 안정적인 ‘양육행동’을 보이면 아이가 ‘안정 애착’을 형성할 가능성도 높아지죠. 하지만 아이가 ‘불안정 애착’을 이루는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불안정 애착’을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아이가 엄마(혹은 양육자)를 안전한 기지로 생각하지 않거나, 부모가 아이의 삶에 필요한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처음에 언급한 엄마처럼 아이와 '불안정 애착'이라고 해서 상처 입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죠.      


왜냐면 ‘애착행동’은 아이 때만 보이는 게 아니라, 청소년 시기나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나거든요.      


볼비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청소년이나 성인 역시 돌봄을 받기 위해 애착대상에게 근접하려는 ‘애착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모인 나도 위험에 처하거나 돌봄이 필요할 때, 누군가를 찾는 ‘애착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나를 보살피고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사람이 ‘양육행동’을 보이는 거죠.      


이 말은 아이일 때만 보살핌을 받는 건 아니기에, 성장하면서 생애 초기에 형성된 '애착'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거겠죠?      


볼비 역시 배우자와 같이 의미 있는 사람과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면, 어린 시절의 불안정한 애착으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안정 애착’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지금 아이가 ‘불안정한 애착행동’을 보인다면, 내가 해야 할 적절한 ‘양육행동’이 무엇인지 고민해서 하나씩 해나가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애착=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정도’로 이해하지 않고 ‘애착=생존을 위한 아이의 본능’으로 받아들여야, 아이와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인 굿핏을 이루기 위해, 오로지 애착에만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겠죠?   


엄마와 '불안정 애착'이라고 해도 아빠와 할머니와 '안정 애착'을 맺고 건강하게 잘 성장한 사람도 있고, 아빠와 '불안정 애착'일지라도 엄마와 '안정 애착'을 이뤄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이와 ‘안정 애착’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부모들을 위해, 해리스의 말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학습한 것을 미래의 관계에까지 일반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신데렐라가 집 밖의 사람들도 새엄마처럼 자기를 대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결코 무도회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마가렛 S. 말러, 프렛 파인, 애니 버그만(1997). 유아의 심리적 탄생-공생과 개별화(이재훈 역). 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

Bowlby, J. (2019). 애착(김창대 역). 경기: 연암서가.

Bowlby, J.(2014). 존 볼비의 안전기지(김수임, 강예리, 강민철 공역). 서울:(주)학지사.

Harris. J. R. (2022). 양육가설(최수근 역). 서울: 도서출판 이김.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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