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아이를 알면, '굿핏(Good Fit)'이 보입니다.
"엄마, 된장찌개에 된장만 넣으면 돼?"
"된장이랑 야채랑 두부랑 파, 마늘도. 육수는 우려냈지?"
"응.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맛이 이상해. 싱거운 건가?"
"그럼, 된장을 더 넣어."
잠시 후,
"엄마, 너무 짜!"
"그럼, 물을 더 넣어."
"얼마큼?"
"간이 맞을 만큼?"
"그게 얼마큼이냐고."
요리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어떻게 엄마는 된장 하나로 그런 맛을 내는지 연금술사가 따로 없지요.
엄마가 알려주는 비밀 레시피처럼 자기를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신 음식 종류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요리를 할지는 각자의 손에 달렸으니까요.
나를 이해하기 위한 '자기 분석'을 하기 전
미리 알려드릴 점은
자기 분석은 정석이나 왕도가 없습니다. 따라서 형식과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단지, 자기를 분석하는 목적과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호흡에 맞춰 진행하면 됩니다.
'자기 분석'을 하기 위해선 자유롭게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놓아야 합니다.
도둑이 눈앞에서 가방 안에 있는 걸 다 내놓으라고 하는데, 얼마 전 산 시계랑 휴대폰은 숨겨놓고, 나머지만 꺼내주면 안 되는 것처럼요.
정신분석학자인 호나이는 완전한 자기표현은 자유연상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말합니다.
자유연상이라고 하니 '프로이트의 의자' 같은 것이 떠오르시나요?
'자유연상'은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모든 것을 규칙 없이 펼쳐놓는 건데요.
간단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자유연상을 할 때에는 사소하거나 생뚱맞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일관적이지 않거나 부끄럽거나 혐오스러운 것조차 빠짐없이 내 안에서 쏟아내야 하는데요.
'모든 것'은 글자의 뜻 그대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일시적이거나 산만한 생각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생각과 기억도 포함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경험들에 관한 기억, 자기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생각, 분석가와 분석 상황에 대한 반응, 종교와 도덕, 정치, 예술에 대한 믿음, 미래를 위한 소망과 계획, 과거와 현재의 공상은 물론이고 꿈도 당연히 포함된다(Horney, 2019).
프로이트가 고안한 이 자유연상 기법은 의식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검열을 멈추고, 특정한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은 의식의 주도 아래 계획적으로 이뤄집니다.
때로는 출근하다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등 돌발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충동을 억누르고 계획대로 직장으로 향하죠.
만약 순간마다 욕구대로 행동한다면, 대가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육아에 지친 제 친구는 남편이 잠든 금요일 밤에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필 다음날 아이가 장염에 걸려 구토와 고열로 입원까지 하는 바람에 하루 만에 집으로 와야 했죠.
“미쳤어! 애가 이런 상태인 줄도 모르고 여행을 가게?”
아이가 아플 걸 알고 떠난 게 아니라 억울했지만, 굵은 주삿바늘을 꽂은 채 누워있는 아이를 보니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일 년 넘게 집에만 있는 일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숨 좀 쉬러 떠난 건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죠.
이렇게 자기를 억누르고 살면 마음의 숨통이 막힙니다.
결국 과호흡과 부정맥에 시달리고 몸에 병이 나는 거죠. 친구도 한밤 중에 몇 번이나 응급실을 찾고 맙니다.
남편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니 이전 글에서 언급한 무의식이 신호를 보내는 거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크면서 친구의 삶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일 뿐, 실상은 괜찮지 않았죠.
“당신은 밥 먹을 때 소리를 참 많이 내.”
“내가 양말 똑바로 벗어놓으라고 했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미안. 당신 생일인데 깜빡했네.”
남편을 향한 친구의 잔소리는 점점 늘어나고 결국 생일까지 잊어버립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그림자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던 거죠.
이때 당장 병원이나 상담소에 가기 어렵다면, 자유연상을 통해 솔직하게 자기를 마주해 보세요.
일단 편한 시간에 안락한 공간에서 최근 문제가 된 사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특정한 형식이나 순서 없이 말해보는 겁니다. 혹은 글로 써도 좋습니다.
남편과 자주 싸우니 힘드네. 아이 보는 것도 더 피곤해지고.
보기 싫은 모습이 너무 많아.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하는 걸 보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거든.
주말에 하루만이라도 아이를 봐달라고 했는데 알겠다고 하면서 그것도 안 지킨 지 몇 주째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부부 사이에 대화도 줄고...
그러고 보니 남편 생일도 잊었네. 내가 끓여준 미역국을 좋아하는데.
그때 혼자 부산에 여행 갔을 때 사온 미역으로 끓여주려고 했는데.
하루였지만 참 좋았어. 두 팔 벌리고 바다를 향해 소리 지르던 그때 진짜 기분 좋았는데.
또 가고 싶다. 혼자서.
친구는 이 말을 내뱉고 움찔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혼자서’라는 말이 나왔는데, 하고 나니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고, 자신 안에 가족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 불안했던 거지요.
우리는 진짜 감정을 대면했을 때,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거나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누가 친구에게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다면, “아니.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왜?”라고 말했겠죠.
그게 엄마이자 아내의 도리이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니까요.
하지만 '자유연상'에서는 그런 사회적 규칙이나 통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감정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맞으니까요.
그런데, 자유연상을 통해 나의 진정한 감정과 접촉하면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왜 그러한 감정이 생겼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비효과 아시죠?
토네이도가 일어나는 이유가 나비의 날갯짓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나의 내면에 일어나는 연쇄적인 반응을 이해하면 분노와 우울을 억누르지 않고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군가에게 진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압으로 인해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감정들을 꺼내서 해결하기 위해 자유연상을 하는 거지요.
제 친구처럼 남편과의 대화가 단절된 채 독박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 내면에서 해결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계속 외면한다면, 언젠가 정말 '혼자서' 떠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되기 전에 왜 '혼자' 시간을 갖고 싶은지,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지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물론 이유를 안다고 당장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남편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고 해도 서로를 이해하기 전까지 문제가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고 침대에 눕고만 싶을 때, 어떻게 자신에게 응급조치를 해줘야 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팔에 금이 가거나 다리가 부러지면 우리는 병원에 갑니다.
신체적 고통과 불편함을 견디기 힘드니까요.
병원에 가기 힘들다면 스스로라도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병원에 가는 게 더 효과적일 때가 많지만요.
우리는 괜찮지 않은데도 거울을 보며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며 자기 최면을 겁니다.
나를 가장 먼저 외면하는 사람이 나일 때, 나는 가장 외로워지죠.
심리학자인 매슬로는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배운다'라고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초월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되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단기간에 숙련되진 않겠지만, 꾸준히 자유연상을 통해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연습함으로써, 굳이 애쓰며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순간을 준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언젠가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솔직하고 편하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겠죠?
참고문헌
Horney, C. (2019). 내 성격은 내가 분석한다(정명진 역). 서울: 도서출판 부글북스.
Maslow, A. H. (2021). 동기와 성격(오혜경 역). 경기: 연암서가.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