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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13. 2024

부모가 아이의 ‘관계 근접발달영역’을 잘 설정하려면?

아이와의 굿핏을 위한 ‘근접발달영역’ 이해하기

혹시 ‘근접발달영역’에 관해 아시나요?     


근접발달영역이란
심리학자인 비고츠키가 제안한 개념으로 ‘실제적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수준 사이의 거리’를 뜻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제 더하기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총 동원해 사물의 개수를 셉니다. 

이 아이의 ‘실제적 발달 수준’은 ‘기초적인 덧셈을 하는 수준’이죠. 


그런데 부모나 교사, 또는 형제와 같이 아이보다 수학적 발달 수준이 높은 조력자가 아이에게 보다 정교한 덧셈을 알려주고 이어서 뺄셈도 가르쳐줍니다. 

더하기의 반대 개념을 배운 아이는 뺄셈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때 ‘뺄셈을 하는 수준’은 아직 아이가 직접 이뤄내지 않은 ‘잠재적 발달 수준’입니다.


이제 덧셈을 시작한 아이가 혼자서는 바로 뺄셈을 할 수는 없지만, 교육적 도움을 받으면 더 높은 수준의 발달을 하게 될 때, 이렇게 현재 할 수 있는 발달 수준인 덧셈을 하는 것과 잠재적으로 할 수 있는 발달 수준인 뺄셈을 하는 것과의 사이를 '근접발달영역'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이가 근접발달영역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같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결정한다는 겁니다.      


만약 부모가 덧셈을 시작한 아이에게 ‘우리 아이는 일차방정식 정도는 바로 풀 수 있어!’라고 믿으며 잠재적 발달 수준을 터무니없이 높게 잡으면, 근접발달영역에는 나눗셈, 곱셈, 일차방정식까지 푸는 발달 수준이 포함되는 거죠.      


아이의 '근접발달영역'이 너무 높게 설정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덧셈을 배웠는데, 정확한 근거 없이 아이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한 부모로 인해 아이는 과도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겠죠.      


근접발달영역 개념을 부모와 자녀 관계에 적용해 볼게요.  

저는 이걸 '관계 근접발달영역'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관계 근접발달영역은 아이가 부모나 교사, 형제 등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현재의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수준 사이의 영역을 뜻합니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 설명드릴게요. 

부모가 관계 근접발달영역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아이와의 관계의 질도 달라집니다.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는 내향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언어폭발기인 3세에도 말이 늦어 부모를 초조하게 했던 아이는 다행스럽게 이제 평균 정도의 언어발달 수준을 보이지만, 아직 조음면에서는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죠.      


“선생님께 인사해야지.”

아이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고개만 숙이지 말고 안녕하세요라고 말해야지. 그렇게 고개만 숙이면 예의 없는 거야.”     

엄마는 아이에게 행동뿐만 아니라 언어를 사용해서 인사하라고 하지만 아이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네요.


아이는 왜 그럴까요?

      

아이가 인사를 하는 단계를 살펴볼까요.

  

처음에는 눈으로 인사를 합니다. 눈을 마주치고 꿈뻑꿈뻑하면 반가움을 표시하는 거죠. 

다음으로 고개를 숙이는 걸 배웁니다. 손을 같이 흔들기도 하면서 신체를 이용해 인사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언어로도 반가움을 표현하며 인사를 하죠. 


아이가 인사를 하는 행동에도 발달단계가 있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한 인사와 관련된 아이의 발달 수준은 어디쯤일까요? 

아마 눈으로 인사를 하는 정도가 아이의 현재 발달상태일 겁니다. 


그리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성공할 수 있는 '잠재적 발달 수준'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거겠죠. 


그러면 '관계 근접발달영역', 즉 부모의 도움을 받아 배울 수 있는 발달 수준은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거죠. 부모는 이 영역 내에서 아이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발달단계는 현재는 아이에겐 이루기 힘든 과업이니까요.     

 

그런데 사례의 부모처럼 아이가 할 수 있는 단계를 너무 높게 설정하면(말로 인사를 하라고 하면), 아이는 발달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을 갖게 됩니다.  

무언가 이루기 위해 과도한 스트레스와 부담을 받게 되니 하기가 싫어지는 거죠.      


부모가 그게 너를 위한 거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아이의 마음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자기효능감'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현재는 할 수 없지만 도움을 받아 이룰 수 있는 발달을 성공하려면, 아이에겐 자기효능감이 꼭 필요합니다.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교사나 부모가 도와줘도 아이는 어떤 일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자기효능감은 어떻게 획득될까요?


당연히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 자신의 능력을 믿게 됩니다. 

매번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기대보다 낮은 결과가 나오는데, 어떻게 ‘나는 할 수 있어!’라는 확신이 생길까요?     

이제 '자기효능감'과 '근접발달영역' 간의 관계를 이해하실 겁니다.    

  

부모가 아이의 수준보다 너무 높은 발달 수준으로 근접발달영역을 설정하면, 아이는 실패를 반복하고 그로 인해 자기효능감이 떨어집니다. 자기효능감이 낮아진 아이는 부모가 근접발달영역의 수준을 낮춰서 다시 제안해도 하기가 싫어지는 거죠.      


아이의 머릿속은 이렇습니다.     


아이는 자꾸 실패를 하다 보면 ‘자기 스키마’ 즉, 주어진 영역에서 자기의 자질을 대표하는 인지적 감정적 구조가 손상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면서 사람들에게 반가움을 표시할 수 있는 사람이야. 친구에게 먼저 다가서진 않지만 친절한 편이지.’     


내가 가진 자질을 대표하는 것은? - 자기 스키마

이렇게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아이의 ‘자기 스키마’는 자신의 자질이 무엇인지 알기에, 거기에 맞춰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데요.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성적인 면은 자기를 대표하는 자질이라고 볼 수 없기에, 아이는 그 부분을 '자기 스키마'에서 제외하고, 반가움을 표시하고 친절한 편이라는 자질을 '자기 스키마'에 저장하죠. 


물론 아이는 당장은 친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진 않지만 부모나 교사, 형제가 근접발달영역을 잘 설정해서 아이를 도우면, 아이는 친구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같이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는 자질을 갖게 되고, 그렇게 ‘자기 스키마’도 변하게 됩니다.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관련된 ‘자기 스키마’를 발달하기 위해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많은 성공 경험을 갖는 것이 관건인데,

말로 인사를 하라는 엄마로 인해 다른 사람 앞에서 위축되어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엄마 뒤로 숨어버린다면, 그나마 있던 ‘나는 반가움을 표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인식하는 자기 스키마’도 희미해지는 거죠.      


비고츠키는 모든 발달의 핵심적 요인은 ‘관계’라고 설명합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아이의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아이의 현재 발달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할 수 없는 영역을 강요하면,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테고, 그러면 건강한 발달도 이루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예전에 사춘기 아이는 체언을 중심으로 짧게 대화하는 게 특징이라고 했는데요. 

비고츠키는 사춘기와 같은 시기를 발달에서의 ‘위기’라고 했습니다.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더 높은 수준의 발달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체되고 만다는 거죠. 


사춘기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의 현재 발달상태를 파악하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 그렇지만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의 과제를 내줘야 합니다.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아이에게 감정카드를 꺼내놓고 감정에 대해 말해보자고 하면, 아이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거죠.    

  

이럴 때 아이와 눈만 마주치는 것도 ‘관계 근접발달영역’에 속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과업을 잘 해낸 거고 부모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아이가 부모랑 눈 마주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사춘기 아이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의 사례에서 아이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것처럼요.    


물론 어릴 때에는 눈도 잘 마주치고 대화도 많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춘기의 눈 맞추기는 어린 시절의 눈 맞추기와는 다른 목적을 가집니다. 


어릴 때는 나와 부모를 구분하고 부모의 감정과 생각을 읽기 위해 눈을 마주쳤지만, 사춘기의 아이가 눈을 맞춘다는 건 호감을 표시하거나 반대로 싸우자는 뜻이니까요. 


부모의 눈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이 시기 아이의 관심은 또래와 세상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크게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내 아이에게 적합한 '관계 근접발달영역'은 다른 아이의 것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이건 아이마다 개별적인 영역이니까요.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부모와 다정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와 같이 장을 보고, 아빠랑 게임을 하며 하하 호호한다고 해서 내 아이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내 아이에 맞게 적절한 수준의 과제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 왜 그럴까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지는 게 싫고, 사람들이 나의 아이를 저평가하는 것도 못 견디게 힘드신가요?

그래서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과제를 내주고 있진 않으세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불안' 때문입니다. 


다른 글에서 말했지만, 부모의 불안은 아이의 현재나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해서 아이로 하여금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하거든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보다 너무 높은 과제를 받고 실패하다 보면,

아이는 처음 보거나 처음 만지거나 처음 가보거나, 뭐든지 처음이라면, 뒤로 물러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뭔가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부모와의 사이에서도 뭔가 새롭게 시도하는 걸 싫어합니다.

이전에 너무 높게 설정된 '관계 근접발달영역'으로 인해, 여러 번 좌절하면서 인생의 쓴 맛을 봤거든요.

  

아이와 가까워지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이제 겨우 엄마 말을 들어야 고개만 숙여 인사하는 아이에게
말로 반가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대신,
“잘했어. 다음엔 네가 스스로 고개 숙이면서 인사해 보자.
엄마가 하라고 말하지 않고 기다릴게.”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부모가 내 아이의 현재 수준에 맞게 적절한 ‘관계 근접발달영역’을 설정하면,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감정과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하며, 

나도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얻게 됩니다. 


나와 아이의 관계에서,

'현재의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수준' 사이인 '관계 근접발달영역'은 어디쯤일까요?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그 영역을 제대로 설정해주고 있는 걸까요?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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