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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12. 2024

나도 나를 모르는데,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의 '자기 분석'은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고,
과거와 미래(이것은 죽음이다)를 알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에리히 프롬, 2021).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나는 자신도, 아이도 잘 모른 채 일상을 반복하며 본연의 색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위해,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탐구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게요.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부모인 내가 나를 알아야 아이도 이해할 수 있으니 끝까지 읽으며 ‘자기 분석’을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인격’의 개념부터 알아야 합니다.      


융은 “인격이란 평생에 걸쳐 여러 단계를 통해 발달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타고난 특질을 최대한 구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요. 

인격은 나의 잠재력을 세상에 드러내서 얻게 되는 나의 '됨됨이'

다시 말해, 우리의 인격은 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때 얻게 되는 우리의 ‘됨됨이’ 같은 겁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만나 상호작용을 하며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성격이나 가치관, 행동 경향 등이 형성되고, 이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는 ‘인격’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인격은 건강하게 발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 사람 최악이야!‘와 같은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됨됨이가 형편없다고 보는 것처럼요.  

    

융은 건강한 인격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벽 5시에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


내면의 목소리라......

분명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그것에 집중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삶의 위기가 닥치면 '내면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대고 말합니다. 

'정신 차려!‘     


인생에서 마주하는 절실함과 긴박함은 자기 서사를 탐구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죠. 

길 가다 곰을 만난 것처럼 위험이 닥치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겁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런 일이 생기지?‘

삶의 위기 앞에서 내면에게 말을 걸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를 하게 되죠.    

  

이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서 고비를 잘 넘기면 건강하게 인격이 발달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나의 됨됨이에 흠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카렌 호나이는 내면의 무언가가 우리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는 것 같다면, 무의식적 동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전의 글에서 설명한 '적응 무의식‘을 떠올려 보세요.   

무의식적 동기는 삶의 위기마다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호나이는 정신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일부는 우리가 마음먹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낮에 남편이나 아이가 툭 던진 말이 그때는 별다른 감정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떠올라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럴 때는 내면에서 왜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켰는지 무의식적 동기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이가 유치원만 입학해도 학부모 모임이 결성됩니다. 그곳에서도 더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기죠. 그런데 이들이 다른 엄마의 뒷담화를 한다고 가정해 보죠.      


“이제 7살인데 체육 과외까지 할 필요가 있어? 헬리콥터 맘인가 봐. 그렇게 유난 떠는 엄마는 처음 봐.”

“그러게 말이야. 그러면서 내가 정보 좀 알려달라니까 나중에 가르쳐준다면서 말도 안 해주고. 사람이 좀 응큼해.”     


이런 사람들 틈에 끼어 몇 달 동안 같이 다니다 보면, 그들의 뒷담화 풍습에 나도 모르게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임 후에 짜증이 나거나 두통이 생깁니다. 그러다 그들을 만나는 날이면 배탈이 나고 감기에 걸리기도 합니다.   

   

결국 호나이의 말처럼 새벽 5시에 벌떡 일어나 ’그 사람들이랑 그만 만나야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의식의 끈이 느슨해지는 시간 무의식은 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렇게 무의식은 나에게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그 사람들이랑 말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져.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게 없다고 불평하던 생각이 떠오르거든.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있다는 게 혐오스러워.'

    

무의식적 동기는 불편한 감정과 신체의 질병을 통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경고를 주는 거죠. 뒷담화 여인들과 만나지 못하게요.    

       

사실 일상에서 자기를 직면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성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제를 삶의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심리적 누수가 발생하면 부리나케 마음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벌어진 틈새를 찾으니까요.          

 

복잡하고 번거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분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진실을 발견할 용기를 얻는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짜 나를 찾았다는 성취감을 경험하면 앞으로의 역경을 탄력적으로 회복하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무엇보다 진실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겸허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게 되죠. 


양육과정에서 부모는 그동안 외면해 온 자신에 관한 진실을 종종 마주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멈춰 서서 이 진실이 말하는 바를 듣지 않고 또다시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를 잃어가게 됩니다.      


둘째,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게 된다.

  

나에 대한 오래된 전설 같은 진실을 알고 나면 나란 사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확장됩니다.   

   

특히, ‘인정욕구, 유기 불안, 의존, 완벽주의, 나르시시즘, 분노, 자기혐오, 수치심과 가면 증후군’ 등 다양한 심리적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을 살펴볼 수 있게 되죠.   

   

물론 문제만 캐내는 것은 아닙니다. 

보석같이 숨겨져 있는 강점도 찾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동안 몰랐던 나와 관련된 무언가를 알아내는 과정을 경험한다는 겁니다. 

이 경험은 매우 가치 있는 자산인데요. 아이를 양육하며 동시에 나도 키우는 원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아이도 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유산이니까요.      


셋째, 자기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심리적 문제가 있으면 정신과와 상담소에 가라고 권했다면, 요즘엔 자기 분석을 제안하는 서적이나 전문가들도 꽤 많습니다.      


가족이나 연인과 이별을 경험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자기 분석의 시간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연구했더니, 참가자들의 상당수가 이별과 관련된 사건을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반추가 감소했고 자신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 재구성하며 아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박성효, 2019).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알아볼까요?     


치유적 글쓰기를 하며 자기 이해를 경험한 어머니들은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되어 사춘기 자녀와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김희진, 조은상, 2022).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이별을 겪으면, 대부분 상처를 되새김질하기 마련이죠. 

그렇게 생산된 아픔은 내면을 침습합니다. 


누군가는 고통을 재생하다 보면 내성이 생기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런 가정은 마치 예리한 것에 찔린 통증에 둔감해지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찌르는 행위가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과 같지요.      


우리가 고통을 직면하는 이유는 고통 뒤에 숨어 동일한 상처를 복사해 내는 유령을 찾기 위한 겁니다. 

즉, 나를 괴롭히는 정체를 알아차리고 이해한 뒤 놓아주는 과정에서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나’와 접촉할 수 있으니까요.     

 

도널드 위니컷은 ‘거짓 자기’는 ‘참자기’를 은폐하고 자신이 가짜 같고 허무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며 사람들과 진정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어떤 동기와 목적이든 상관없이, ‘만들어진 가짜 자기’는 거짓된 삶을 살게 하는 법이죠.


항상 비밀을 숨기고 있으니 편하게 나를 드러낼 수 없고, 누군가 나를 의심하면 그로부터 도망치고 맙니다. 


‘진짜 자기’가 누군지 모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나’만 남게 됩니다.     

 

나의 아이가 진실된 자기를 만나길 바라세요?      


그렇다면, 내가 먼저 참된 나와 만나야 아이에게도 진짜 자기를 만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와 강풍만 불면 쉽게 날아가버리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자기 분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아이는 짚더미로 만들어진 아기 돼지의 집처럼 늑대의 입김만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가벼운 사이'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참고문헌

에리히 프롬(2021). 인간의 마음(황문수 역). 서울: ㈜문예출판사.     

Jung, C. G. (2015). 인격은 어떻게 발달하는가. 서울: 부글북스.     

Horney, K. (2023). 나를 다 안다는 착각(서나연 역). 서울: 페이지2북스.     

박성효(2019). 관계상실 경험자의 자기분석과 자기노출이 외상후 성장에 미치는 영향.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김희진, 조은상(2022). 집단문학치료를 통한 중년여성의 자기이해-청소년 자녀와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인문과학연구, 74, 275-310.     

Clair, M. St. (2015). 대상관계이론과 자기심리학(안석모 역). 서울: 박학사.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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