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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25. 2024

누구를 위하여 '분노'는 울리나

부모의 마음속 독이 되는 감정, 분노

분식집에서 생긴 일


봄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 나들이를 나온 가족이 분식집에 들어옵니다.


부모와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딸은 원형테이블에 둘러앉아 메뉴를 훑어보죠.

각자 원하는 것을 주문하자마자, 아들과 딸은 휴대폰을 봅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너무 많이 본다며 타박하자, 아들은 슬그머니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네요.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아빠에게 눈치를 줍니다. 하지만 아빠는 모른 척하며 휴대폰으로 눈을 돌립니다.

짜증이 난 엄마는 갑자기 아들에게 덥지 않냐고 묻습니다.


16도의 날씨에 아들이 한겨울에나 어울릴만한 털코트를 입고 있기 때문이죠.

아들은 덥지 않다며 어묵 국물을 마십니다. 이마에선 땀이 줄줄 나는데도 말이죠.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딸은 테이블에 휴대폰을 놓고 떡볶이로 포크를 가져갑니다.

새빨간 떡볶이가 입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옷에 떨어지는 참사가 발생하죠.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딸을 나무라자, 아빠가 엄마를 말립니다.


엄마는 애들이 하루종일 휴대폰을 끼고 사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빠가 더 나쁘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아빠 역시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지자, 딸은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가버리네요.


모든 게 당신 탓이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만 둘이 남게 되었죠.


엄마의 마음엔 한여름 더위가 찾아왔는지 입고 있던 카디건 마저 벗어던진 채 냉수를 들이켭니다.

아들은 잠시 엄마의 눈치를 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남은 라면과 김밥을 먹네요.


아직 분이 덜 풀린 엄마가 밥이 넘어가냐며 아들에게 핀잔을 주자 아들 역시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시 휴대폰을 봅니다.


이제 엄마의 화는 머리끝까지 차올라 터뜨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휴대폰을 뺏어 밖으로 나갑니다.

당황한 아들은 엄마의 뒤를 따라나가지만 이미 휴대폰은 시멘트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죠.      

허공으로 사지를 허우적대며 울분을 터뜨리는 아들과 그런 아들에게 화를 내는 엄마, 엄마에게 역정을 내는 아빠, 그리고 그런 가족들이 한심하다는 듯 저만치 멀어져 가는 딸...


그렇게 오랜만의 외출은 갑자기 찾아온 봄비에 만개한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듯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혹시 우리 가족도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아이와의 베드 핏을 부르는 부모의 마음속 독이 되는 감정 중 세 번째인 '분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분노라는 폭탄을 안고 사는 사람들


분노 과밀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죠.

가정과 학교, 식당이나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화를 참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납니다.          


처음의 사례에서 가족들은 분노를 다루지 못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죠. 각자 분노를 위한 명분을 갖고 있지만 돌아보면 화로 종결지을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처럼 가족 간에 공통점이 없으면 대화할 거리가 사라집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일상이나 관심사를 알지 못하니 같이 있어도 휴대폰만 보게 되죠.


엄마는 아들이 왜 봄에 겨울옷을 입는지, 눈도 안 마주치는 딸의 마음엔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있는지, 남편이 왜 자신과 아이들의 눈치를 보는지 모릅니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 모르는 게 많으니 당연히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엄마의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은 밀도 높은 화가 되어 쏟아집니다.


엄마 입장에서 분노를 느끼는 건 정당하므로 떳떳하게 드러내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분노하는 사람이 가족 중 한 명이라면, 그것도 나의 부모라면 어떨까요?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 ‘두렵고 무서운’이라는 감정 라벨을 붙일 겁니다.


분노는 사람과의 관계를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파괴적인 힘을 적절히 다루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와 부당한 대우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죠.        

   

루이 팬과 그의 동료들은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어떠한 방식으로 공유하는지 조사했습니다.      

이들은 개인들이 올리는 온라인 게시물의 ‘좋아요’나 ‘공유되는 횟수’를 계산하여, 어떤 감정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전파되는지를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분노’였습니다.      


사람들은 분노와 관련된 게시물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자신이 느낀 분노를 전달했죠.      


우리는 왜 분노라는 감정에 강하게 끌리는 걸까요?     


사람들은 누군가로 인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방해를 받거나 이익이 침해당했을 때 주로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는 분노를 느끼면 잘못한 사람을 벌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는 상대를 처벌할 때 보상과 관련된 반응에 관여하는 ‘등 쪽 선조체’라는 뇌 구조가 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등 쪽 선조체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한 바가 충족되었다는 뜻으로, 벌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일종의 기쁨을 느낍니다(Martin, 2024).     


사람들이 다른 감정에 비해 분노라는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상대가 잘못했을 때 화를 내면, 내가 당한 피해를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는 거죠.      

가슴에 담아두었던 서운함과 괴로움을 밖으로 꺼내놓고 나면, 오랫동안 쌓아둔 쓰레기를 버린 것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처음의 사례에서 엄마의 분노를 떠올려보세요.

엄마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화를 냄으로써, 무시당한 피해가 조금이나마 복구되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악을 쓰고 욕을 하며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감정을 털어내는 것이 과연 기쁨이나 만족감만 안겨줄까요?     


아이에게 화를 낸 부모들은 분노가 사그라들고 난 후, 대부분 후회와 절망에 빠져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부모가 분노한 이유는 아이에게 앙갚음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단지 이해와 관심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니까요. 아이를 사랑해서 좋은 사이가 되고 싶은데 아이와의 관계가 마음대로 안 되니 짜증이 쌓여 화로 표현된 거죠.


생각과 감정을 잘 정돈해서 전달하는 방법을 모르는 부모는 분노라는 조정하기 어려운 정서를 만나면 더욱 당황하게 됩니다.


혹시 분노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자신을 자주 보게 되나요?   

  

부모가 화를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이를 보고 자란 자녀는 ‘분노’라는 감정을 자신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함부로’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1994년 5월 어느 날, 한국 사회는 아들이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인해 일시 정지될 정도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식이 부모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절대 일어나서도 또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살해 동기로 인해 더 유명세를 탔는데요. 도박에 빠져 돈을 탕진한 아들에게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화가 난 아들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던 거죠.      


30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분노’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분노로 인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들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되갚아주라고 권하는 ‘화와 벌’의 공연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분노는 이렇게 다루는 거야.’라고 가르치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분노라는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기 위한 방법을 습득해야 하겠죠.          

 

사실 ‘분노’는 무조건 나쁜 감정이 아닙니다. 모든 감정은 존재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으니까요. ‘분노’ 역시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칼은 유용하지만, 분노와 결합하여 사람을 잔인하게 해치는 용도로 쓰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의와 분노가 만나면,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불의에 대항하는 무기가 됩니다.      


분노는 삶에 필요한 감정이지만, 부모가 분노를 너무 자주, 부적절할 방법으로 표현하면, 아이와 Bad Fit(나쁜 관계)를 이루게 되므로, 나의 분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란 어떤 감정일까요?          


많은 심리학자들은 분노를 2차 정서로 봅니다.


분노가 놀람, 기쁨 등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감정 정서인 1차 정서가 아니라 2차 정서인 이유는 다른 정서에 뿌리를 두고 발생하기 때문입니다(스티븐스, 2023).     

     

다시 말해, 분노라는 감정은 혼자서 나타나지 않고, 다른 정서를 숨긴 채 등장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숨겨진 감정을 모른 채, 우리는 화만 내는 겁니다.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야! 하지 말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     


엄마는 아이가 거짓말을 한 행동에 화가 난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널 얼마나 믿고 사랑하는데 어떻게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줄 수 있어. 왜 너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고 내가 너를 아끼듯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와 같이 슬픔과 소외감, 배신감과 같은 감정을 1차적으로 느끼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이러한 1차 감정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못한 채, 2차 감정인 분노만을 드러냅니다.      

부모가 분노 속에 감춰진 감정들을 알아차린 후, 이를 아이에게 공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전달하면,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감정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화가 난다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점점 더 자주 화를 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분노가 감정을 넘어 성격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로젠와인(2021)은 심리적 구성주의와 사회구성주의의 관점에서 분노를 설명하는데, 분노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부모나 학교, 사회를 통해 개념화되거나 만들어진 감정이라고 봅니다.     


부모가 얼굴이 상기된 채로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화를 드러내면, 아이는 ‘저런 것이 분노구나.’라고 인식하면서 분노라는 감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즉, 아이가 분노라는 감정이 어떤 건지 정의를 내리고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방식을 결정하는 건, 가정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화를 낼까요?     


철학자인 세네카는 상대가 나를 불공정하게 대해서 분노가 촉발된다고 말한 반면,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분노의 목적이 ‘우월성의 추구’라고 주장합니다.      


한 사람의 권력욕이나 지배욕을 구체화시키는 감정이 분노다. 이 표출 형태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모든 저항을 재빨리, 그리고 힘에 의해 진압해 버리려는 분명한 목적을 노출시킨다. 분노하는 사람은 모든 힘을 결집해서 자신의 우월성을 추구하려 한다(Adler, 2016).


우리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방해하면 내가 가진 힘으로 제압하고 싶어지는 거죠. 분노가 바로 그 힘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화를 통해 상대가 나의 욕구 충족을 방해하지 않도록 만들면, ‘그것 봐. 내가 너보다 세지? 너는 나를 방해할 수 없어.’라며 자신이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게 아들러의 주장이죠.   

   

혹시 아이와의 사이에서 분노라는 힘으로 아이를 꼼짝 못 하게 하면서 ‘내가 너보다 힘이 세니, 내 말을 들어.’라는 우월성을 드러내고 있진 않나요?          


분노는 거미줄처럼 조금씩 나의 마음을 장악하여, 그 속에 화를 표출하기 위한 이유를 차곡차곡 잡아둡니다.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아이가 나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한 것

아이가 나의 체면을 깎는 행동을 한 것

아이가 나의 행동에 고마워하지 않는 것

아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아이가 나의 사랑을 보잘것없게 여기는 것......    

 

나의 마음속 분노의 거미줄엔 얼마나 많은 화낼 거리가 쌓여있을까요.
가까이 보아야 더 잘 보이는 법이죠.
분노도 그렇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부모의 분노가 아이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Fan, R., Zhao, J., Chen, Y., & Xu, K. (2014). Anger Is More Influential than Joy: Sentiment Correlation in Weibo. PLoS ONE, 9, e110184.

브렌다 스티븐스 (2023). 나르시시스트 관계 수업(이애리 역). 서울: 유노라이프.

Martin, R. (2024). 분노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신동숙 역). 서울:(주)예문아카이브.

Adler, A. (2016). 아들러의 인간이해(홍혜경 역). 서울: ㈜을유문화사.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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