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편) 새내기 의대생의 좌충우돌 번아웃 경험기

나는 번아웃을 달고 사는 의대생이다. 사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쓰는 유행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의대에 입학하고 난 뒤의 나를 돌아보면, 삶의 곳곳에서 그 단어가 꼭 붙어 있어야 설명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신입생이지만 주어진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한꺼번에 모든 활동을 받아 안았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소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소진의 경험이야말로 내가 성장하는 방식이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번아웃을 반복하는 내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길어진 하루, 짧아진 호흡

늘 새벽 6시 전후에 눈을 뜬다. 술자리가 아무리 늦어도, 전날 새벽까지 일을 붙잡고 있었어도 알람 소리에 몸은 자동으로 깨어난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루틴은 내게 양날의 검과 같다.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감사하지만, 동시에 남들보다 길어진 하루를 꽉 채우고 싶다는 강박도 만들어낸다.

아침에는 논문을 읽고, 점심에는 약속을 잡고, 저녁에는 술자리와 모임이 이어진다. 이렇게 과열된 일정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성취한 듯 뿌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호흡이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길어진 하루가 오히려 내 숨을 옥죄는 아이러니, 그것이 내가 살아내는 리듬이었다.



정신과 의원에서 마주한 나

― 정서적 억제 도식, 놀지 않는 아이가 자라 만든 그림자

번아웃을 반복하는 내 일상의 단면은 밴드부 OB 선배님이 개원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선배님의 초대로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브레인맵 영 심리도식 검사를 받았다. ‘정서적 억제 도식’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놀이터보다는 피아노, 수영, 복싱 같은 배움을 택했던 나는 이미 ‘놀지 않는 아이’로 자라왔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보다는, 통제와 성취를 선택하는 일이 익숙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여전히 번아웃과 회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도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졌다.

정서적 억제 도식은 나를 옥죄는 족쇄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덕분에 버텨온 순간도 있었다. 매번 감정에 흔들렸다면 지금처럼 빠르게 걸어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은 때때로 내 인간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었다. 사람들 속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늘 ‘혼자’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것. 그것이 내가 짊어진 그림자였다.



번아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번아웃 오면 어떡할 거야?”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번아웃 오면 쉬면 되지.”


내게 번아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시도했고, 끝까지 몰입했다는 증거다. (BURN을 했으니까 BURNOUT이지, 아니면 그냥 OUT이다.) 포기하지 않고 달린 자만이 번아웃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번아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훈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번아웃을 겪고 난 뒤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일어서는가다.

나에게는 술자리에서의 웃음, 따뜻한 햇살과 파란 하늘, 헬스장에서의 땀 한 방울이 그 답이었다. 그 작은 순간들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훈련이자 나만의 회복 공식이었다.



기회와 시간

― 과잉의 시간 속에서 집요함을 택하다

2025년은 내게 특별한 해다. 현역으로 경희대 의예과에 합격했고, 그러나 파업 사태로 인해 수업이 미뤄지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시간’을 얻었다. 대부분은 이 시간을 휴식으로 삼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시간을 기회로 삼았다.

KMEA 운영팀 활동, 오디엔 인턴십, 각종 모임과 프로젝트 참여…. 누군가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하느냐’고 묻지만, 내겐 단순하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무언가를 쉽게 얻을 운명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작은 기회라도 붙잡는 집요함뿐이다.

물론 그 선택은 나를 자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지친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여전히 ‘걷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의대생이라는 신분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무력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번아웃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선배의 말, 그리고 나의 다짐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 선배님이 남긴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너희는 안 좋은 시국에 수업을 못 듣고 있다고 해서 의대생이 아닌 게 아니야.

너희는 이미 충분히 귀한 인재들이야.”


그 말은 내 불안을 잠재우는 동시에, 다시 나를 뜨겁게 몰아붙이는 동력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미숙한 스무 살이고, 술과 공부와 인간관계 사이에서 흔들리며 하루를 산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번아웃을 두려워하지 않고, 번아웃을 반복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과정이야말로 내 성장일기다.



성장일기의 서막

이 글은 ‘0편’이다. 앞으로도 나는 크고 작은 번아웃들을 경험할 것이다. 어떤 날은 무너져서 하루 종일 잠만 잘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눈에 불을 켜고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번아웃을 ‘종착역’이 아니라 ‘이정표’로 받아들이려 한다.


소진과 회복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써 내려갈 성장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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