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전형의 벽 – 네오르네상스라는 높은 장벽
경희대학교 의예과 입시를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이름은 ‘네오르네상스 전형’이었다. 이 전형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조차 없다는 점 때문에 전국의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이 몰려드는 구조였다. 당연히 합격자 평균 내신은 전국에서도 손꼽히게 높았다. 내가 입시를 치렀던 2025학년도 전형에서는 전년도 합격자 평균 내신이 1.0x이었다. 단순히 ‘잘한다’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최상위권 중에서도 또다시 선별되는’ 자리였다.
그 현실 앞에서 나는 매일 불안에 떨었다. 지방 일반고 학생인 내가 과연 이 무대에서 어떤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특목고 학생들은 화려한 생기부로 무장해 있었다. 반면 나는 우리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교과와 동아리를 중심으로 탐구를 이어온 것이 전부였다. 활동의 양이나 규모만 놓고 본다면, 내 생기부는 분명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나만의 무기를 담았다. 흔한 주제를 택하더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진단적 가치를 발견해내려는 시도와 통찰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연속혈당측정기(CGM) 탐구였다. 사실 혈당이라는 주제는 누구나 한 번쯤 다루는 흔한 테마였다. 단순히 혈당 변화를 기록하고 식사 전후 변화를 비교하는 정도라면, 차별성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단순히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학Ⅱ에서 배운 평균 변화율과 미분계수 개념을 실제 혈당 그래프에 적용했다. 순간적인 기울기 변화를 통해 혈당 스파이크의 크기와 빈도를 측정하고, 그것을 진단적 지표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나아가 디지털치료제와 엮어 탐구하고 여러 공학적 기술과도 연결시켰다.
가족과 친구들을 설득해 한 달간 CGM을 직접 착용하게 했고, 그 데이터를 모아 비교·분석했다. 놀랍게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특정한 패턴에서 이상 그래프가 반복적으로 나타난 사람이 있었고, 나는 정밀검진을 권유했다. 결국 그 사람은 초기 내당능장애 위험과 고혈압 소견을 받았다. 단순한 탐구 활동이 실제 건강 문제를 예측하고, 조기 발견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그날의 충격과 뿌듯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경험은 나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주었다. 흔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내가 담은 통찰과 접근법이 남들과는 다른 길을 열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나아가 CGM은 기존의 대표적 지표인 당화혈색소(HbA1c)보다 더 직관적이고 타당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펼치게 되었다. 당화혈색소가 평균값에 불과해 단기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면, CGM은 일상 속의 미세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차이가 향후 당뇨 합병증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면접 준비 과정에서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관련 논문과 자료를 찾아 읽었고, 나만의 언어로 재해석해 답변에 녹여냈다.
의대 학종은 내게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어떻게 깊이 있게 탐구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유한 시선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나는 이 사실을 늦지 않게 깨달았다. 다른 학생들의 꾸며낸 말들은 분명 화려했지만, 그 누구도 내가 경험한 ‘실제 건강 문제를 조기 발견한 순간의 울림’은 가질 수 없었다. 나만의 서사가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차별화해줄 무기였지 않을까.
물론 불안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내 이야기가 과연 입학사정관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까?”, “특목고 학생들의 네임값에 묻히지는 않을까?” 매일 밤 이런 의문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불안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동력으로 삼았다. 불안할수록 면접 예상 질문을 더 많이 뽑아 답변을 준비했고, 목소리를 녹음하며 나의 설명 방식을 점검했다. 생기부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내가 이 주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뤘는지를 확인했다. 마치 생기부 속 기록들이 나에게 “괜찮아, 너는 진짜로 해왔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의대 입시는 내게 단순한 입시 관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흔한 주제를 어떻게 특별하게 만들어내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특출한 환경이나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학과 의학을 연결하며, 새로운 진단적 가치를 제안한 경험은 분명 나만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치열한 전형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수많은 컨설팅 업체가 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학생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업체가 아닌 멘토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