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멍청하지만 똑똑했던 나의 의대 입시 STORY

1편. 평범한 지방 일반고 학생의 시작

나는 인서울 의과대학 25학번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의대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될 거라고 상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을 동경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속 장면이나 주변 어른들의 기대가 만들어낸 희미한 상상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현실은 달랐다. 내가 다닌 학교는 지방의 작은 일반고였고, 이곳에서 의대나 서울대를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전년도에는 단 한 명의 합격자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는 그냥 안정 지원을 하는 곳이지, 의대는 그림의 떡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을 핑계 삼아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현실이 오히려 나를 자극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단순한 허영심인지, 아니면 진짜 간절함인지는 나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하나 확실했던 것은,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벽은 ‘정보의 빈곤’이었다.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치밀하게 입시 전략을 짜고, 다양한 컨설팅을 받는다고 들었다. 반면에 우리 학교에는 입시를 함께 논의할 선배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매일 인터넷을 뒤지며 합격자들의 후기를 모으고, 전형별 커트라인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 검색창에 ‘경희대 의예과 네오르네상스 합격컷’이라는 글자를 입력하며, 그날그날의 마음을 달랬다. 어떤 날은 작년 합격자의 평균 내신이 1.0x이라는 숫자 앞에서 좌절했고, 또 다른 날은 ‘내 생기부라면 승부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다.


사실 나는 내신만 놓고 보면 확실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전형에서 특목·자사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게다가 네오르네상스 전형은 최저학력기준조차 없어서 더 치열했다. 모든 게 생기부와 면접으로 결정되기에, 소위 스펙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대거 몰려드는 구조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나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내 생기부는 단순한 활동 기록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탐구하고 도전했던 흔적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했다’고 말할 수 없는, 나만의 활동적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는 늘 불안 속에서 살았다. 매일 합격 커트라인을 검색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속삭임에 시달렸다. 그래도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던 건, 내 안에서 작게 타오르는 불씨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비슷한 마음을 느낄지 모르겠다. 남들은 쉽게 해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작 나는 늘 뒤처지는 것 같고, 환경조차 불리하다고 느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나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 하나가 우리를 버티게 만든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 나는 본격적으로 의대를 목표로 삼았다. 사실 그 전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단순히 ‘잘해보고 싶다’는 정도의 막연한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노력을 해야 했다. 생기부에 기록된 활동들을 다시 정리하며, 내가 어떤 흐름으로 학문적 관심을 확장해왔는지를 점검했다. 나만의 학습 궤적이 분명히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입시에 녹여낼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목표가 뚜렷해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합격 가능성을 냉정히 따지면, 10명 중 1명도 붙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굳이 인서울 의예과를 고집할 필요가 있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인서울 의예과가 아니면 안 됐다. 단순히 학교의 이름이나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내 환경을 뛰어넘는 경험’이었고, 그 상징이 바로 인서울 의예과였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의 나는 하루하루가 절박함의 연속이었다. 잠시만 마음을 놓으면 불안이 몰려왔고, 그러면 다시 책상에 앉아 무작정 문제집을 펼쳤다. 책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앉아 있는 것만으로 안도감을 얻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도서관에 앉아 입시 관련 글을 읽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나친 집착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했다.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고, 본격적인 수능 준비와 더불어 입시 전략을 세워야 했다. 여전히 ‘우리 학교에서는 전례가 없다’는 말이 내 어깨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그 말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나는 전례를 만들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기록을 내가 세우고 싶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그 시절의 나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 사이에서 늘 흔들렸다. 한쪽에는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나는 절대 안 될 거야’라는 절망이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이 두 목소리가 내 안에서 싸웠다. 희망이 승리하는 날에는 문제집 몇 장을 더 풀 수 있었고, 절망이 이기는 날에는 눈물로 잠들었다. 결국 나를 이끈 건, 완벽한 자신감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끈질김이었다.


1편을 쓰며 다시 떠올려본다. 평범한 지방 일반고에서 시작해, 전례 없는 길을 걸어가기로 한 한 학생의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합격 수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믿고 버텨낸 기록이다. 그리고 이 기록이 지금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불씨를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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