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가 좋다. 이라부를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시험인지도 모르고 속아서 강매당한 고액의 아이큐검사가 신뢰도나 타당도에서 그 값을 한다면 말이다. 첫 만남에서 이게 어떤 시험인지도 모르고 그저 약을 줄지 말지 결정하는 간단한 진단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취조의 형식으로 몇 시간이나 흘렀고 나는 점점 더 불성실해졌기에, 나중에야 이게 지능검사인 것을 알고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으나 처음부터 시험의 성격을 알았다면 내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더 기를 써서 숫자 올리기에 몰두했을 것이다. 이제와서 그것의 존재 가치는 내가 우울감을 호소하면 너가 머리가 좋다며 대충 퉁치는 이라부의 재료일 뿐이지만 말이다.
내가 배설한 글을 즐기는 사람들 중 몇몇은 자살했다. 자살할 사람이 그들의 구미에 맞아 내가 싼 글을 킁킁거리다 원래 할 자살을 했는지, 나의 검은 아가리에서 나오는 언어에 어떤 저주가 걸려 그들의 죽음을 부추겼을 수도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기실 내가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광야의 넝마주이를 걸친 광인처럼 누가 있든 없든 나는 그냥 떠드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독자가 없다고 생각해야 나는 좀더 원하는 순수함이라던지 솔직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 혹여 그것이 수치스럽거나 나의 치부를 고백하는 꼴이 될지라도 말이다. 미대를 중퇴하고 아스퍼거의 느낌이 있는 S는 유튜브로 큰돈을 벌고 한강변에 집이 있는데, 그녀는 왜 내 배설을 돈 만드는데 쓰지 않느냐고 한다. 확실히 그녀는 돈 버는 것 말고는 다 못하니까.
고백건데 나는 역전 앞 중노년의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깔깔거리는 것, 종각공원에서 그들만의 격렬한 희노애락에 빠져 장기나 잔술을 마시는 것, 비루한 남자가 실실 웃으며 구멍가게 앞에 있는 것 등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들의 미래는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비루하게 이어지다가 필멸의 때가 와서 숨이 끊어질 것이다.
나는 그런 변수따위 없는 단조롭고 서스펜스 없는 삶이나 그 미래를 생각하며 이를 나에게 투영해보며 전율한다. 부모의 삶도 그런 것이었고 나또한 결국 부품의 나사 정도의 역할을 하다 세월과 함께 마모되면 관리자에 의해 교체되어 수거함에 놓여 대기하다가 어느순간 사라질 것이라는 메타포는 불쾌한 과호흡을 불러온다. 범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언젠가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