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경을 잘 닦지 않는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내 외부에서 나를 보고 얼굴을 보고 또 거기에서 안경의 렌즈를 보는 누군가가, 가족이라면 즉각 시정을 요구할 것이고 이외의 사람이라면 나와의 친밀도에 반비례하여 참는 시간이 다르겠으나 언젠가는 나에게 이를 정중하거나 자연스럽게 지적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편안함을 위해 렌즈를 닦거나 대충 닦는 척을 한다.
사실 나는 더러운 렌즈로 세상을 보고 문자를 읽는 것에 큰 불편함이 없든. 오에 겐자부로의 표현대로라면 나의 안구는 실질적으로 뇌 쪽을 향해 있고 겉의 눈알은 그저 충혈된 빨간색의 딸기맛 젤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능한 한 눈알은 죽은 생선의 눈을 유지하고 통 속의 뇌처럼 그때그때의 생각에나 잠겨있는 것이다. 그것이 다소 반사회덕이거나 비사회적인 습성이라도 말이다.
강박이 한창 심했을 때, 나는 약 1년여간을 해뜨기 전 일어나 어슴푸레한 아파트 뒤쪽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보온병에서 꺼낸 계피차를 마시고 반대쪽 길로 인적 드문 비포장길로 집에 돌아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 산의 정상에는 오래되고 큰 나무가 기념수로 있는데, 전승으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기가 센 나무라고 했다. 실제로 나무의 몸체를 가까이 가서 보면 아우성치는 얼굴들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그곳엔 무속인들의 제사상들도 있고 굿집들도 많아 새벽에 혼자 걷는 것은 으스스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강박관념은 위대하여 그런 짓을 하도록 나에게 명령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두운 겨울 새벽에 산 중턱 운동기구에서 인기척이 들려 유심히 보니, 아파트에서 머리를 다쳐 공격적이게 된 정신병자라고 소문이 나있던 40대 언저리의 남자가 격렬한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검은 바람막이에 검은 바지를 입고 은행강도 같은 바클라바를 했고 이윽고 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둘 중 하나는 이윽고 새벽 산행을 그만두었다.
3기절을 하고 깨어났지만 골반에는 통나무처럼 쓰러졌던 날의 멍이 남아있는 며칠 뒤, 나는 비 오는 밤 귀가를 했다. 걷는 중에도 나의 눈은 나의 뇌 속을 보고 충혈된 눈알 젤리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나에게 호소하듯 알려준다. 그렇기에 눈앞 새앙쥐가 보인건 의외였다.
거기에 더해 이 쥐는 풀씨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사람인 나를 피해 달아나지 않았다. 나는 당황해 쥐가 피해 달아나는 것을 보기 위해 기다렸으나 쥐는 그저 풀씨를 우물거렸다. 불현듯 예전에 퓰리처상 사진에서 본 죽기 직전 아프리카 기아 앞에 식사를 주문해 둔 손님처럼 가만히 기다리는 까마귀 사진이 떠올랐다. 이 작은 동물은 이미 나를 죽은 인간으로 감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울해져 이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