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발로 일해서 집에 와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보니 발이 마치 원양산 해동오징어의 발처럼 느껴저 얼마간 우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발이 퉁퉁 불으면 우울해지는 유형의 사람인 것이지요. 이제는 비가 오고 그 속을 걷다가 발이 젖어버렸는데, 귀가시간이 멀었다면 가능한 한 집으로 돌아가 마른 신과 양말을 갈아신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새 양말과 새 신을 삽니다. 제가 먹는 비보험으로 처방받는 약봉투의 값보다 그편으로 우울을 달래주는 것이 싼 편인데다, 이런 기행은 고백건대 절 은근히 범인은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서 스스로가 위대한 식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변칙적인 방법으로 특별한 존재임을 느끼는 편리한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는 일과를 하다가 블랙아웃이 와서 잠깐 기절해 쓰러졌습니다. 저는 소라껍질 속 살코키처럼 밖에 나오는 걸 싫어하지만 일단 꼬챙이에 꿰어져 나오고 나면 간장에 찍혀 먹히지 않게 단단히 긴장하는 편이어서, 금방 의식을 찾았지요. 그리고 바빠서 글을 쓰는 지금까지 그걸 문제로 병원을 가진 못했습니다. 대신 점심을 결식하고 몰래 이라부에게 가서 기절한 걸 자랑처럼 이야기하고는 간계한 술책으로 더 강한 약을 타려고 했지요.
이라부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기절한 스토리를 듣고 배가 찢어지게 웃고는, 더 강한 약을 준다면 많은 시간 동안 생각을 못하게 될거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로보토미를 하는데 더 두꺼운 아이스픽으로 눈꺼풀 아래를 통해 뇌를 더 크게 휘저어버려, 제가 더더욱 좀비가 된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일단은 단념하고 주는 대로 약이나 타서 차에다가 숨겨뒀죠. '마음'자가 들어간 약봉투는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아야 하니까요.
기절 건은 회사 사람들이 꽤나 목격해서 걱정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 모습을 봤다면 저라도 그렇게 했겠죠.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 지분없이 있다가 쓰러진 사람이 큰 일이라도 나게 되면 자의적 타의적인 빚을 지분으로 갚기 어려울 테니까요. 저는 솔직히 그냥 부끄러웠고 꼰대들이 하는 얘기들이나 읇조리며 이것도 내가 스스로를 관리 못한 것이라고 센척을 하면서 조퇴도 거부하고 점심시간에 몰래 이라부나 만나고 온 겁니다.
저라도 당연히 그랬을 거고, 회사에서 우연히 일정기간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역설적으로 저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못했어요. 제 기대에 넘쳐버리는 걱정을 할 테니까요. 적당히 친한 것은 엄정히 정하기도 어렵기도 해서, 저는 그저 이라부에게 떠들고 같이 웃고 말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