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기감에 짓눌린 암울한 터널 속에 있을 때에는 카페인을 모유처럼 마시는 기질이 있다. 이 기질은 내가 미군 부대에서 생활할 때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들 중 다수는 한국에선 허용되지 않는 카페인 고함량의 에너지드링크를 아기 팔뚝만한 큰 용량의 캔으로 들고 다니며 물처럼 마셨다. 그리고 그들 다수는 코카시안이나 니그로 계통으로, 나보다 우수한 췌장이나 기타 장기를 가지고 있다. 한때 나는 그래서 아침과 저녁에 에너지드링크를 마시고 물대신 커피를 마시며 생활했고, 그 양이 과하면 어떻게 입이 턻어지고 손끝의 경련이 느껴지는지 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카페인을 모유처럼 마시고 있다. 그건 내가 지금 위기감에 짓눌린 암울한 터널 속에 있다는 적극적 근거다.
그리하여 나는 이른바 만성 카페인 중독자로, 수년간 고용량을 몸에 끌어붓고도 수면엔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 겪는 불면증은 낯설고도 지옥 같은 것으로, 나는 카페인을 잔뜩 빨아들이고선 어리석게도 수면유도제나 수면제를 들이붓는다. 몸 속에선 두 세력의 긴장감과 잇따른 전투가 느껴진다. 나는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응원하는 진영을 바꾼다. 심장은 빨리 뛰기도, 진정돼 느려지기도 하며 지옥의 인터벌을 하고 이를 집행하는 나에게 앙심을 품고 언젠가 커다란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것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용감해진다. 어둡고 잠재적 위험들이 도사리는 골목길을 혼자 걸으면서도 뒤에 칼이 꽂히는 것을 은근히 기대한다. 쇼닥터들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겁을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하지 말라는 것들, 예를 들어 빈속에 독한 약들을 먹어 위장이 펑크날 짓들을 하며 은근히 그런 파열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것은 자기처벌의 방편이나 자기파괴의 유용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우울의 포르노그라피로서 나에게 역설적인 위로가 되고 꼴사나워진 내 처지를 비관치 않고 그저 냉소하고 미는 방어기제가 된다. 일단 나는 그렇게는 일단 살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