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장발, 스카잔

by Josh

거지존을 약간의 수치심과 함께 장기간 견디고 열펌을 하고 공들여 드라이하다가 이건 포기하고 대신 컬크림을 발라 모양내 드라이하는 수고를 견디는 건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을 사랑해서라고 생각하고 비슷한 류의 질문이나 스몰톡에도 반쯤은 농담 섞인 어투로 그렇게 대답한다


십수 킬로미터를 달리면 이제 땀에 젖어 찰랑이며 찰싹대는 머리칼로 인해 이어폰이 반응해서 음악이 일시정지 되거나 뒤로, 혹은 앞으로 넘어가든가 하여(나는 잠금 모드 같은 걸 찾아서 그때그때 할 정도로 기민하지 못하기도 하고) 머리띠를 하고 뛰는데 대체적으로 반대 성별보다 긴 머리카락을 평생토록 유지하는 여성들의 애로사항의 극히 일부나마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경직된 조직에 검은 양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용도로서도 나는 아주 만족스럽게 머리를 기르고 있다.


허울 뿐인 구호에 의미 없는 소진으로 상실될 거룩한 희생양이 되기보다는 미친 개나 검은 양이 되겠다. 예수님이 되기 위해서는(정확히는 르네상스 이후 판화에 나오는 예수님의 프로토타입을 모방하기 위해서는)수염도 길러야 하는데. 나의 모근의 분포를 보건데 아주 가능하지만 그건 또다른 단계로서 나는 일단 고민해보기로 한다.


요코스카 기지에서 흘러나온 항공점퍼들에 화려한 왜색 자수를 넣은 걸 스카잔이라고 한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스카잔을 찾고 있다. 그 형태도 모양도 태생처럼 자유분방하고 또 생겨난 다양한 브랜드들이 있으나 되도록이면 나는 3만엔 정도에 '정의'라는 한자가 엄숙하고도 크게 박힌 자수에 되도록이면 벚꽃이 있고 용은 없는 걸 찾고 있다. 아메리카무라라던지 아메요코라던지 요코스카에 가면 그저 넋넣고 지나다닌다.


아직까지 내가 생각한 류의 스카잔은 발견하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커스텀하거나 새겨넣기도 싫다. 그건 나의 객기다. 사실은 골든가이 쯤에서 어떤 여자애가 그 비슷한 걸 입은 걸 본 적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붙잡고 물어보면 반칙 아니겠나. 나는 길에서 자연스럽게 놓여져 팔리기를 기다리는 걸 사겠다. 동묘앞이나 깡통시장에서 발견하더라도 상관없다. 죽을 때까지 못찾더라도 딱히 상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스카잔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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