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녀온 출장은 사실 인습의 소산 같은 거다.
사는 회사와 파는 회사가 있다면 나는 사는 회사에 속하고, PO·COA 보험증 같은 건 몇 트럭씩 나누는 사이다. 도의적으로 1년에 한 번쯤 사람을 보내주면, 저쪽은 대충 밥 먹이고 잘 재워주겠다는, 그런 접대의 관습 같은 것일 테다.
어느 지역에서는 물고기를 자를 때 반드시 세 토막을 낸다고 한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면서, 그냥 세 토막을 내서 요리를 했다.
어느 날, 시간이 남아돌고 오지랖도 넓고 반사회적이고 비뚤어진 인간 하나가 거기에 의문을 품고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그렇게 해서 그렇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물어봤더니 증조할머니가 그렇게 해서 그렇다고 했다. 다 죽어가는 증조할머니가 스틱스 강을 건너기 직전, 찰나의 순간을 잘 잡아서 물어보았더니(임종 직전에 그런 걸 묻는 건 좀 인정머리 없는 짓이긴 하다) 당시에는 주물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냄비가 작았다고 했다. 그래서 물고기를 세 토막 친 게 전부였다고.
이번 출장도 사실 그런 거다.
나는 이미 내부의 상당 부분이 결여돼 있고, 뒤틀려 있다.
외국 출장은 고사하고, ‘외국 출장’이라는 단어에도 별 감흥이 없다. 땅을 달리는 교통수단 몇 개를 갈아타고,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그 사이사이 잠을 자고, 일터에 가면 해야 할 일을 하고, 다시 되풀이해서 돌아온다. 그리고 나는 급료를 받는다.
다만 이건 아주 피곤한 일이다.
회사에서야 내가 어떤 개차반을 부리든, 망나니 노릇을 하든, 그 대가는 오로지 내가 받는다. 그런데 이런 출장은 내가 아닌 것으로서 가는 것이다. 몇 남아 있지 않은 인간미를 끌어내서,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혼신의 노력을 해내야 하는데, 그건 정말로 피곤한 일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호의를 놓치지 않고 사례하고,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경의를 느끼는 척하면서 적절한 찬사를 보내야 한다. 먹는 것들은 전부 이 나라의 우수한 풍토와 고결한 민족성의 산실인 것처럼 마구 먹으며 탄성을 내뱉어야 한다. 여러 술을 돌리는 가운데 의식이 가물해져도(이 공짜 술은 유일한 베네핏이다) 절대로 내가 ‘나’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서 여기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허벅지를 꼬집으며 스스로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한 번은, 작년에도 만났던 상대역이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다.
나는 거의 나의 집에 타인을 초대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두 번째 본 나를, 혹은 내가 준 선물이 좋아서 자신의 내밀한 가정까지 초대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사람들을 집에 불러들여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고 하필 그 대상이 나인 것뿐인지, 혹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투철해서 나름의 고객사 사절인 나에게 극한의 접대를 베풀어 회사에 이바지하고, 그 보상을 바라는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도 ‘내가 아닌 나’로서 있는 중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그 초대에 응한다.
나는 이런 초대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집에 가면 그들의 가족이 있고, 그들과는 아주 살갑고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깊은 관심이 있는 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환대와 접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가 쉬이 통하지 않고, 서로 서툰 제3의 언어들 사이에서 장시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 절박한 상황에서 가능한 소통은 거의 정해져 있다.
결국 인류 공통의 기초적인 소재들로 귀결되는 것이다.
가족이 있지요.
당신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는 잘 지내시나오. 형제자매는 있습니까. 가족들에게 잘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공경하고, 어머니는 사랑스러운 분이시겠지요. 건강하시지요? 저런, 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삶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
그렇죠, 삶이 참으로 힘들지요. 그곳에서건 이곳에서건, 삶이란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것에 감사히 여기면서 건강을 최고로 여기고, 복을 바라야지요.
애인은 있습니까.
아니 없군요. 우리 나라 여자는 어떻습니까. 제 아는 친구의 딸이 어쩌고저쩌고…
인류 공통의 기초적인 소재들이라, 이건 거의 러시아 문학 아닌가.
며칠간 피곤해 죽겠는데, 결국 권태롭던 나의 일부는 염치불구하고 베란다 문을 열고, 이미 황포 강변에 투신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