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러시아적

by Josh

날씨도 러시아였다. 러시아 문학을 읽었다.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식은 러시아식은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알게 된 사람들이 돈들을 보냈다. 절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와서 술을 많이 마셨다.


스톨리치나야는 억울한 보드까다(표준 표기법으로는 '카'겠으나, 내 기분이 '까'를 쓰도록 요구하니 그렇게 쓰겠다). 소련시절부터 3,4번 증류하고 3,4번 필터링해서 만드는 유서 깊은 이 보드카는 러시아 시절 사유화와 국유화를 두고 당국과 싸우고 에스토니아에 본적을 둔 스톨리치나야와 본국에 남은 스톨리치나야로 나뉘었다. 그래도 에스토니아의 스톨리치나야도 러시아산 밀을 썼다. 전쟁이 터졌다. 에스토니아의 스톨리치나야는 러시아산 밀 사용을 관두고 슬로바키아산 밀을 사용했다.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발트3국은 러시아에게 연약한 발톱을 드러내고 열심히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대개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깊게 보거나 시간을 들여서 확인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의 스톨리치나야는 아주 억울하게 되었다(사실 대부분의 수출품은 에스토니아산이다). 사람들이 병을 깬 영상을 자랑스레 SNS에 올렸다. 판매량이 떨어졌다. 나는 그걸 대단히 가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각설하고, 조금 19세기 러시아스러운 기분이 오랜만에 들어서 스톨리치나야를 3박스 샀다. 순간 내 차가 주류회사의 영업차량이 되었다. 첫번째로 내가 오만하게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1촌지간이 아닌 2촌지간임에도 불구한 조사에 그렇게 오만하고 무시하고 저속한 나에게서 경조사비를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해 극히 인지하면서도 조의금을 준 사람들에게 스톨리치나야를 나누어주었다. 그들의 용기에 생명수(슬라브인들은 추운 날씨에 온기를 불어넣는 이 투명한 액체를 생명의 물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보드까의 어원이 되었다)로 조금이나마 보답했다. 또 와준 사람들 중 운전을 맡아서 우거지 국과 수육과 코다리와 전과 떡은 먹어도 술은 먹지 못한 사람들을 추려서 나누어주었다. 그걸 아득히 초과하는 수의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들여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상징적인 내 나름대로의 보상을 할 것이다. 어머니가 고향에 가지고 있는 집과 농사를 짓는 땅에 잠시 머물던 고양이가 새에게 공격받자 구해준 일이 있다. 고양이는 다음 날에 죽은 생쥐를 어머니의 고향 집에 두고 갔다. 나는 그 고양이에 대해서 이따금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서 벤조디아제핀과 프로작을 받아오는 이라부를 만났다. 이런 러시아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뭇 감격받고 예의 나의 주식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돈을 꽤 벌었다. 보름 전부터 어떤 투자적 변곡점이 있었고 그는 그걸 아쉬워했다. 그리고 나에게 2주에 한번 올 것을 제안했다. 나는 꺼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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