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혹은 하루키가 목소리를 빌린 하루키 초기 3부작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그랬다. 진짜 예술을 감상코 싶거든 고대 그리스에서일 뿐이라고. 노예가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과실을 따고 옷감을 잣고 장잭을 패고 아이를 돌보는 고대 그리스. 그리고 주인은 그저 예술을 하면 된다. 그 이후의 예술은 그때와 같은 온전한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다. 지금까지 노예제는 메타포로든 묵시적으로든 비겁한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왔고 공작이나 후작이나 백작, 자작 혹은 남작이 그렇게 소설이나 시를 쓰거나 극본을 썼다. 더 나아가서 이런 작위를 가진 사람이 무슨 난에 가담해서 시베리아 유형을 가거나 프랑스어로 자랑스레 떠들거나 흑해에서 맥주를 마시고 차에 각종 잼을 넣어마신다면 그는 러시아 문학을 할 것이고, 매일같이 마차를 타고 여기저기 저택으로 가서 파티를 하고 불륜을 하고 도박을 하고 달빛 아래에서 탄식한다면 프랑스 문학을 할 것이고, 작위를 물려줄 청교도적인 부모가 템스 강변의 시궁창에서 3살 때부터 연탄청소부보다도 건강치 못할 수준의 청빈한 삶을 강요한다면 영국 문학을 할 것이다.
이런 작위나 묵시적이거나 암시적인 노예없이 노동하고 불완전하게 예술을 한다면, 옥수수빵을 먹고 버번에 중독된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고 포경선이나 상선이나 증기선에 타거나 통나무집에서 살며 미국문학을 할 것이고, 스미다강 판잣집 하숙을 전전하면서 게다짝을 신고 게이샤 꽁무니를 좇으며 일본문학을 할 수도 있고, 재수가 사나우면 카프카나 조이스처럼 무국적자가 될 수도 있다.
난 이걸 할 생각은 없다. 필연적으로, 또 자의적으로 늙어서건 젊어서건 나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불로소득으로 감자탕이나 김밥 정도는 놀고먹으며 살게될 삶이 예비되어있다. 그때쯤 나는 진상이 적은 나라의 반쯤 외곽진 곳에서 내가 듣고싶은 록 음악만을 틀고, 내가 좋아해서 수집해온 술들을 샷으로 팔고, 되는데로 담배를 필터를 뜯어 피우면서 감자를 튀기고, 오믈렛과 오이 샌드위치를 팔면서 임대료 만큼만 벌거다. 그리고 새벽녘 주방 부엌에서 이도저도 아닌 글을 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