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를 내고 A와 에버랜드에 갔다.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 정로환을 9알이나 먹버렸다는 것이 사유였다. 이건 거짓은 아니었다. 병가를 내기 전날 저지르고는 당일엔 사무실에 버티고 앉아 복통을 견뎠으므로, 사유는 시간의 오차만 있을 뿐 명징한 사실이었다. 여기에 내 병가 결재를 올려준 친한 녀석이 위세척까지 했다는 참으로 사려깊은 부연까지 해줘서 나의 병가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공고한 것이 되었다.
가기 전 여지없이 새벽에 일어나 10km를 달렸다. 강박적인 본성에 나는 가능하면 맞춰주기에, 내 다리만 좀더 힘들기로 하고 매일 하는 루틴에 예외를 적용해서 오는 불쾌함을 회피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도 나는 비겁하고 틔미하다. 그리고 바질 베이글과 참깨 베이글의 반을 가르고 오이와 치즈와 햄을 넣은 샌드위치를 싸고 랩으로 감고 우롱차와 자스민차 병을 함께 보냉백에 넣고 오픈시간쯤 입장했다.
외출하기 좋은 날씨, 늦게 개화해 만개한 벚꽃, 소풍철, 비오고 흐리는 날들 중 간만의 화창한 날씨로 차라리 휴일같아 보이는 인파였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였고 그들 언어 특유의 성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어딘가 결여되어보이는 한국인 남성과 어딘가 부자연스러워보이는 외국인 여자의 짝들도 몇 보았다. 스마트 줄서기를 쓸만한 어트랙션도 없었다. A가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만 묵묵히 따라갔다. 불꽃놀이까지 볼 예정이어서 이미 뭐든 담담히 걷고, 타고, 볼 뿐이었다.
산리오 공연은 A의 메인 디시 중 하나였다. 헬로키티와 쿠로미와 시나몬과 케로케로인지와 또다른 캐릭터가 나와서 노래부르고 춤췄다.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잘하고 있고 행복할 가치가 있고 힘내라고 하며 춤을 추었고 아이들과 그 부모들과 아이없이 온 어른들도 극도로 기뻐하며 호응했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면서, 키가 작고 머리 위에 커핏잔을 얹고 있는 시나몬 인형 속 아르바이트생의 머리가 커핏잔 위치에 있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달리 무언가 결여되어있다.
그때 나는 어딘가 훼손되고 무언가 상실되었다고 느꼈다. 내 어린 시절 나도 퍼레이드와 축제와 동물들과 놀이공원의 분위기에 맞는 타당하고 온당한 유쾌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 기억이 아스라이 있으므로, 나의 결여는 그 유년시절과 지금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발생한 것인데, 도무지 어떤 것들을 특정하고 기소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쿠로미 팝콘 통에 받아든 카라멜 팝콘을 씹으면서 80분동안 사파리 버스투어를 기다리며 쿠로미의 속을 파먹는듯한 착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따금 그 고민에서 들어갔다나왔다 할 뿐이었다.
저녁의 퍼레이드를 보고 저 사람들은 억지로 웃는지, 인형 속에서는 실연이라던지 직장 내 따돌림이나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실은 울면서 춤을 추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지 생각해보고, 마지막으로 밤의 불꽃놀이를 보고 돌아와서는 기절하듯이 잠들고, 다음날 조깅 후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 뒤 차가운 맥주와 푸딩을 먹으면서 또 나는 결여와 상실과 훼손에 대한 생각에 잠식되었다. 그러다 봄베이 사파이어와 솔 토닉을 섞어마시며 송충이의 속이 나의 속보다 충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회신을 미뤄오던 몇몇에게 전화하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