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이맘때는 점심시간에 밖에 있는 것이 억울해진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다가 문득 그 생각에 밖을 나왔다. 그러나 오늘은 식료품점에가서 살 야채나 과일이나 고기가 없었다. 사야 할 책도 없었고 가야 할 병원도 없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럴 때면 습관적으로 하듯 사무실 근처의 바틀샵에 갔다. 아주 많이 더 나이를 먹어야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살 수 있을 때부터 그 가게는 있었는데, 이제 폐점 세일을 한다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퍽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들어가 멸망한 왕조의 무덤 도굴꾼처럼 시세보다 훨씬 싼 술 몇병을 홀리듯 샀다.
도굴을 하고 나니 갑자기 서글픈 마음과 변덕이 들어서, 몇 명의 회사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혹시 죄송하지만 선물용 종이가방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가게 주인은 이제 종이 백마저 없다며 커다란 비닐 봉투에 술병이 짤랑대게 그것들을 담아주었다. 근처 다이소에서 크래프트 종이봉투와 작은 편지 몇통을 사왔다.
산 술들은 전통주 하나, 위스키 하나, 리큐르 하나였는데 생각나는대로 회사 일에서 신세진 세 명을 정했다.
각 술의 주인을 정한 기준은 없었지만 그 분배를 결코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짤막한 편지마다, 받는 사람마다 다른 내용의 편지를 짤막하게 적었다. 내용은 기실 비슷했다. 조건없이 나에게 베푼 선의에 고맙다, 당신들은 선선히 해준 것들은 나에게 큰 것이다, 값비싼 선물은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나의 성의를 기쁘게 받아주기 바란다, 지금 발령난 곳들이 지옥의 아가리 근처에 있는 것 같아도 힘내기 바란다, 이런 글을 유의어와 상징과 비유와 드라마를 변형해 적었지만 편지 수신인의 이름과 그에 맞는 술의 종류는 섞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종이끈 세줄이 남아있어서 병에 편지를 묶고 크래프트 종이백에 담았다.
오늘은 한가롭고 무두절이기도 해서, 사내 메신저에 그들이 부재중이지 않은 것에 안도하고, 가까운 부서에 있는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연락하고 방문했다. 모두 말 그대로 전달만 하고 긴 대화는 피했다. 사람들은 기뻐하고 마약 던지기 매매를 하듯 물건을 던지고 도망간 나에게 의문을 담은 메일을 사내메신저로 보내왔다. 답장은 모두 같은 내용으로 보냈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마라,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이런 내용 비스무레한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구절. 그들은 원래부터 선한 사람들이고 그만큼 관용있는 사람들이어서, 나의 이런 짓도 기껍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정가를 주고 그 술들을 사서 집에서 혼자 마시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