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잔인한 하루

by Josh

나의 오늘 하루는 사실상 01시 30분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퍽 잔인한 일이다. 전초부대인 마그네슘과 아르기닌은 시체도 돌아오지 못했고 1차 방어선인 벤조디아제핀이 무너졌으며 통상 견고한 2차 방어선인 밀수해온 멜라토닌도 팍삭 바스라져서 나는 01시 30분에 일어나 조랑말을 타고 온 잔인한 불면 앞에 끌려나와 무릎 꿇은 오만했던 술탄과 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 다시 눈을 감고 자비를 찾듯 잠을 청하나 헛될 것을 직감으로 안다.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자서 그런가. 그렇다면 이 멍청한 대가리는 고작 2, 3MB 남짓할 용량에도 버거워 이리 버벅거린단 말인가. 나는 이 대가리의 전원을 아예 꺼버릴 순 있지만 그렇다고 일시정지는 시킬 수가 없다. 아주 유감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불면의 밤엔 이제 저주처럼 오에 겐자부로의 장중한 '만엔 원년의 풋볼' 초반 수십 페이지의 도입부가 떠오른다. 지구상 누구도 그렇게 불면의 상황을 감미롭고 감각적으로 수십 페이지에 걸쳐 풀어낼 수 있을까. 1994년 스웨덴 한림원 사람들이 이 도입부를 읽으면서 이미 그 해의 노벨 문학상 당선을 정해버렸을 거라고 확신한다. 다만 나는 그런 아름다운 글을 쓸 수도 없고 주인공처럼 새벽녘 들어가 아침까지 들어가있을 뒷마당도 없고 구덩이도 없다.


나는 결국 스마트폰을 켠다. 수면의 확률은 더욱더 난망해진다. 아, 어딘가로 여행을 가려고 했지. 대강의 날짜를 정하고 '아무데나'의 항공권과 가격을 본다. 이스탄불, 70만원. 호오, 10여년 전 나는 119만원을 내고 비슷한 경유비행편으로 다녀왔는데. 나는 그때처럼 메두사의 머리와 토프카프 궁전과 아야 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보고 감동'해낼' 수 있을까. 보스포로스 대교를 지나 소아시아로 건너가 야간버스와 사기꾼 신발닦이를 또다시 견뎌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시계는 이제 두려워 보지 않는다. 시간이 경과한만큼 내 몸은 그에 비례해 의무적으로 무의식적신 피곤을 내게 청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태엽시계의 시간을 새기는 소리가 싫어해서, 집에는 전자시계만이 차갑게 시간의 경과를 그저 '반영'함에도 나는 무음의 그 똑딱이는 소리에 몸서리친다. 비참해질수록 빛나는 러시아 문학처럼 이럴 때마다 일시정지할 수 없는 나의 머리는 갖가지 글의 조각들을 집시가 훔친 싸구려 장물을 보여주며 유혹하듯 꺼내온다. 나는 그것에도 저항할 수가 없다.


실수로 전자시계 액정을 스치듯 보니 4시 40분을 지나간다. 밀수해온 멜라토닌을 먹고 스스로에게 한겨울의 참호전 중 48시간만의 근무 교대를 끝내고 국방색 모포 속으로 빨려들어간 연합군 병사의 이미자를 부여한다. 스스로에게 누운 자세의 편안함과 바삭하고 부드러운 침대와 침구의 편안함의 이미지를 강요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깬다. 1시간 정도를 잤다. 6시 10분이다. 문득 생각나 엔비디아의 실적발표를 본다. 이미 실적을 채우느냐, 가이던스가 오르냐의 건조한 숫자의 문제를 지나있다. 관건은 이제 월가를 감동시키느냐 아니냐이다. 다분히 실존주의적이 아닌가. 본질에 실존이 앞서는 상태에서 나는 이미 돈을 회수해 도망간 상태여서 큰 흥분은 없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 조금 일찍 아파트 휘트니스에 갔다. 당황스럽게도 항상 보이던, 트레드밀에 강박증세를 보이며 쓰러질듯한 자세로 뛰는 광기어린 할머니도 없고 새해부터 보이던 해병대 티셔츠를 입고 웨이트를 하던 남자도 없다. 아무도 없다. 나의 하루는 초엽부터 너무 길게 늘어지고 다소간 혹독하다. 그런데 안쪽의 어둑한 요가 룸에서 미친듯이 훌라우프를 돌리는 그림자가 보인다. 그것은 제자리에서 신을 만난답시고 빙글빙글 도는 수피즘의 셰마 의식을 떠오르게 만드는 동시에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카파도키아에 갔을 때 빌어먹을 동굴호텔의 주인장 할배는 우리에게 아침식사를 강매하고도 모자라 150불에 셰마의식 관람과 저녁식사 티켓까지 팔려고 했는데.


어쨌든 수피즘 훌라우프를 왼쪽 90도 각도로 파수하며 나는 평소와 같이 달리기로 한다. 이어폰을 끼고 락음악을 틀고 달려야하는 내 습관을 오늘만은 예외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수피즘에 굴복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어느순간 내가 창밖을 보고 이 비현실적인 감각을 잊으려 거리를 보고 오렌지색 여명을 보고 나뭇가지를 보고 있을 때 수피가 살금살금 훌라우프를 들고 나와 내 위로 훌라우프를 드리우고 낚아채가는 상상이 들어 파수를 멈추기는 힘들다. 낚아채가서 나는 요가 룸에 포박되고 거기서 강박증 걸린 할머니와 해병대 출신 청년과 재회할지도 모른다.


그런 비현실적인 감각과 뒤틀린 조깅은 누군가 입장하면서 녹아내렸다. 안경 벗은 나의 눈은 해상도가 낮은 초창기 휴대폰 카메라를 확대한 정도의 명징함으로, 회색 옷을 입은 누군가 정도로 인식되나 그 정도의 정보량으로 나의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데는 충분하다. 이제 돌아가 씻고 돈을 벌러 가야지. 다만 오늘부터는 돈키호테를 읽어야 해서 잊지않고 책을 챙긴다. 이제야 사회적인 하루는 시작되는데. 하루가 목매 죽은 오래된 변사자의 혓바닥처럼 너무 늘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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