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행복

by Josh

오늘은 오래간만에 유쾌하고 낙천적인 기분이 들었다. 실은 전과 같이 아침 일찍 깨버려서 다시 잠들기 어려운 탓에 책을 읽다가 남은 카레를 해치울 요량으로 우동면을 대충 삶아서 물러터진 샤인머스켓과 함께 먹어치울 때까지 그런 전조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이제사 생각건대 텅 빈 사무실에 두었던(나는 텅 빈 사무실을 좋아한다) 하루키 잡문집을 읽으러 차를 타고 나갈 때가 그 실마리였음을 느낀다. 사무실로 갈 때를 맞춰 눈이 그친 것이다.


기분좋은 텅 빈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꽤나 두꺼운 잡문집을 다 읽었다. 에세이는 맥주 가게에서 우롱차를 파는 느낌이라고 하루키는 말하지만, 그건 맛있다. 때맞춰 오늘 픽업이 가능할 거라고 기대도 않던 위스키가 입고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다 읽고 밖에 나와보니 눈과 바람이 굉장했다. 날씨와 내면의 감정은 정비례의 관계가 아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포레스트 검프'에서 월남전에서 영광스러운 예비된 전사를 두 다리와 함께 빼앗겼다고 실의에 빠져 살던 댄 테일러는 폭풍우 속 포레스트 검프의 추레한 새우잡이 배 위의 마스트에서 구원받고 세상과 화해했듯이.


위스키를 픽업하고 헌책방에서 하루키의 라디오 에세이 시리즈 트릴로지 전집을 모두 살 수 있었다. 세 권 중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가 한 권밖에 없어서 안도감을 느꼈다. 계산대에서는 설날이어선지 룰렛 이벤트를 하고있었다. 1천원, 2천원, 3천원 할인, 그리고 꽝. 무심하게 룰렛을 돌렸는데 3천원 할인이 걸렸다. 점원이 무심코 탄성을 작게 내질렀는데, 그걸 듣고 기분이 본격적으로 좋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올해가 원숭이 띠의 삼재라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작년에 들었고 12간지는 음력이 기준이니 설날 전날까지는 유효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곧 끝난다. 그러니까 지금은 30km 야간행군 중 마지막 쉬는 시간이 끝나고 저 멀리 병영이 보이고 우리를 맞아줄 군악대의 알록달록한 예복들이 보이기 직전인듯 느꼈다. 그런 날이다.

-주, 이건 단지 오늘 약기운이 좋아서일수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요힘베를 오랜만에 먹어서일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에세이)잔인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