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맥락도 없이 카프카의 소송에 등장하는 뷔르스트너 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요제프 K가 갑자기 키스를 갈겨버린 하숙집 이웃 여성 뷔르스트너 양. 주요인물도 아니고 카프카적인 소설 답게 카프카다운 뷔르스트너 양. 달릴 때도 식사할 때도 뷔르스트너 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뷔르스트너 양은 지금도 19세기 초의 부다페스트에서 이따금 극장에도 가고 밤늦게까지 가끔 놀고 귀가할 것이다. 요제프K는 이미 아 개같다! 라고 외치며 죽어버려서 지금으로선 평화롭게 살고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뷔르스트너 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싫증이 나서건 제정신이 돌아와서건 다른 변덕이 들어서건 관둘 것이다. 그래도 나는 꽤나 꾸준하고 침착하고 담담하고 산발적이고 때론 장중하게 뷔르스트너 양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로 이어지는 하루키 초기 4부작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나는 절대로 이 편협한 명제에 대해 타협할 생각이 없다. 우디 앨런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모르는 젊은 애새끼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몇 개를 보아서 아직 희박한 조건과 상황이 된다면 우디 앨런과 친하게 지낼 수도 있다. 실은 나도 하루키의 초기 4부작을 읽지 않은 모든 사람들과 절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모든 장편은 모두 읽었지만 관대하게도 나와 같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지는 않겠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정도까지만 읽어준다면 나는 매우 기뻐하면서 블러디 메리나 진 토닉까지 손수 대접하며 우리 집에서 재워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은 진을 빠지게 한다. 요즈음에 진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피로로 인해 세상이 더 미워져 신사답지 못하게 군듯 하여 반성하는 의미로 오늘은 럼을 샀다. 다만 럼은 비장한 맛이 없어서 사워 에일을 마시고 보드카로 블러디 메리를 만들어 마셨다. 우스터 소스 대신 간장과 식초를 넣었다. 요컨데 이건 동양의 블러디 메리가 되는 셈이다. 그래도 블러디 메리는 앤 불린보단 그래도 형편이 낫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둘 형편이 나보다는 다 낫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