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편의상 증류주와 증류주가 아닌 것으로 나눠보자. 증류주는 페르시아의 연금술사가 고결하고 도전적인 실험을 통해 뜻하지 않게 얻게 된 부산물이다. 술을 끓여내 물보다 먼저 기화해 나오는 에탄올의 이슬을 모아 증류주가 아닌 술은 에탄올이 보다 농밀해진 증류주가 된다. 이 방법을 개발한 연금술사의 민족을 학살한 몽골인들은 그들의 조랑말에 종말과 세기말적 비탄과 종교적 심판의 등짐을 싫은 말 안장에 증류주 제조법도 매달아두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내달았다. 그렇게 서양인들은 포도주와 사과술을 끓여 브랜디를 만들고 스코틀랜드 인들은 춥고 축축한 그들의 양조장에서 맥아를 끓여 위스키를 만들었고 동양인들은 청주를 끓여 소주를 만들었다. 그러면 이제 시간을 대부분의 구대륙인이 증류주를 알게 된 시점과 증류주를 모르게 된 시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건, 내가 오늘 조깅하며 생각해 보건데, 명징하고 통렬한 이분법이 될 수도 있다. 술을 몇 양동이나 마셨다는 고대 중국의 영웅 호걸들은 사실 막걸리나 과실주 나발을 불던 동네 주정뱅이로 보일 수 있다. 장비가 형을 잃은 슬픔으로 만취해 부하들을 학대하지 않고 독한 소주를 마셔서 아예 기절해버려 부하들에게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다. 술에 취해 일어나서 기록된 모든 사건들에 도수를 10도, 20도 추가해서 추리해보면 세상은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사기를 기록한 사마천이 거세된 슬픔에 저도주가 아닌 고도주를 죽도록 마셔대서 불멸의 기록을 남기기도 전에 간경화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석우로가 일본에서 술에 취한 정도가 더 심해져서 행패를 부릴 정도가 아니게 되어 그저 흐느적거리다가 안전하게 귀가해서 가족들과 단란하고 평화롭게 죽을 때까지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오늘 새벽 조깅을 하며 어제 마셔댄 진과 토닉을 땀으로 증류해내면서 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담배 파이프를 사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파이프를 사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뽀빠이 아저씨처럼 물고 일을 하면 아주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나를 미친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런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구강기에 어머니는 나를 젖으로 배불리 먹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나의 욕구는 어머니의 유방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죽고 싶은 기분이나 집중을 하거나 짜증이 날 때면 왼손 검지 제일 아래 마디의 오른쪽 부분을 물고 씹는다. 그런 짓을 계속하다 보니 내 왼손 검지 제일 아래 마디의 오른쪽 부분은 굳은살이 배기고 변색이 되어버렸고 내 치열도 좀 못생겨지게 되었다. 차라리 그럴 바엔 파이프를 물고 잘근잘근 씹으며 하루에 8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건강하고 훌륭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담뱃대를 검색해 보았더니 제대로 된 것을 사려면 10만원, 조잡한 중국산을 산다면 부담이 없는 가격이다. 다만 나는 그것을 담배잎을 넣고 태우면서 숨을 뱉고 쉬기 위한 입술의 밀착 부분이 아니라, 잘근잘근 씹히는 역할을 파이프의 흡입구에 부여해야 한다. 그건 흡입구에게 부당하고 가혹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잘근잘근 씹히면서 차근차근 마모해갈 것이다. 내 손가락은 잘근잘근 씹히면서 세포를 죽인 벽을 더 높고 견고하게 쌓으면서 두껍고 무감각하게 강해져가는데, 파이프의 흡입구는 마멸되어 가는 것이다. 손가락의 주인인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