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회사

by Josh

곱창 같은 말과 글을 말하고 쓰고싶다, 아니 나는 이미 그런 말과 글을 지향하며 떠들고 있다, 고 문득 생각했다. 고르고 고른 싱싱한 음소나 단어를 빡빡 씻고 주의깊게 까뒤집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냄새의 곱들이 보존되도록 하고, 그것을 부위별로 배열하거나 향신료를 얹어 그것이 향하는 독자나 청자에게 내미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조리사인 나의 실력이 형편없건 그들이 먹을 줄 모른 사람이건 씹고 씹으며 그럴 때마다 다른 풍미로 나오는 곱을 느끼는 사람은 많이 없는듯하다. 그걸 믿고 나는 곱이 아닌 곱창의 잔변을 고의로 남겨두기도 하고 비열한 미소를 남몰래 짓기도 한다. 또는 정말 주의깊게 닦고 좋은 걸 골라 잘 구워 줘도 씹지도 않고 넘기는 걸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새로 인사가 나서 부서를 옮겼다. 새 곳 근처에는 헌책방이 있어 헌책을 사다가 읽기도 하고 괜찮은 바틀샵이 있어 커티삭이나 페이머스그라우스 같은 마실만한 위스키 중 가장 싼 위스키들을 구해서 퇴근 후 마시기도 한다. 사실 전보 전에는 선상반란이 있었다. DDF. 성병과 드라마 없는 게 나인데, 전 부서엔 성병은 모르겠고 드라마 있는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 자신만의 내러티브도 없고 콘텐츠도 없어서 일터에 저리도 진심이고 과몰입들을 하는 건가,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들 싸우고 계파가 갈리고 집단 반란을 하는 데 내 이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폭동파에 들어갔는지, 본의 아니게 귀찮은 인수인계와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물론, 헌책방과 값싼 위스키를 파는 가게가 있어 그럭저럭 만족하지만.


투르게네프를 읽고있다. 러시아 작가들 중 굳이 하루키가 언급을 꽤나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러시아 사람 치곤 적당히 세련돼서 읽기 수월하다. 사실 고전명작, 특히 외국의 것은 예전에 유일하게 즐길 게 책이어서 문해력이 월등했을 과거 사람들보다 갈수록 문해력이 절망적이 되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점점 읽기 불가능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독서라는 행위의 성취성이라던지 자기효능감을 위해서 읽는다는 것이 팔기 위한 책들, 예컨데 하루이틀 동기만 부여하고 잊어버리는 수없이 명멸하는 자기계발서나 그럴듯한 그림에 몇글자 달랑 적힌 에세이 같은 걸 참칭하는 책들이 잘 팔리는게 아닐까. 물론 이건 오만한 내 생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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