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출근을 했다. 감기가 심해졌다. 남들은 걱정을 했고 나는 내 면역을 믿는다고 걱정하지 않았다. 조퇴하고 조금 자다가 술을 마셨다. 쿠팡 플레이에서 영화 부활을 보았다. 지옥이 시작됐다. 오후 8시쯤부터 기절하듯 꿈과 현실을 오갔다. 열 번 가까이 깨고 일어날 때마다 시빌워 뒤의 미국 남부나 2차 세계대전 뒤의 영국이나 에드가 엘런 포의 일상이나 옐친 이후의 러시아 같은 몰락의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혹은 비연속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잘못됨을 깨닫고 보니 12시가 조금 넘어있어 인근 이비인후과를 검색해보았다. 많은 이비인후과들이 토요일 오후 1시까지 영업인데도 영업 종료라고 되어있어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약국이라도 가야겠다 싶어 옷을 입고 보니 암막커튼의 어둠이 아닌 자정의 어둠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조금 절망해서 구급함 속 철지난 감기약들을 주워먹고 수면제를 먹고 필사적으로 잠에 들었다. 약 두 배 정도로 깊이와 고통을 더한 이미지들이 떠오르다가 가라앉았다. 4시쯤 일어날 때 열이 가라앉음을 느꼈고 정오에 일어나니 이불과 시트가 그 섬유의 무게의 몇배로 젖어있었다
바이러스가 증류된 기분이 들어 의기양양해진 나는 속으로 나는 12시간만에 부활했다, 예수님보다도 60시간이 빠르다, 라고 되뇌고 사무실에 출근해 압살롬, 압살롬을 읽고 러닝을 하고 집에 돌아와 술을 마셨다. 밤에 바이러스가 부활했다. 이번에는 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또다시 흠뻑 젖어 추위에 깼고 다시 구급함 속 누덕한 감기약을 필사적으로 주워먹고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다시 다소 부활했다. 러닝을 하고 결의에 차서 고지방 고탄수의 음식을 듬뿍 먹고 출근해서 미들마치를 읽었다. 밤에또 바이러스가 부활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술을 마시지 않을 예정이나, 또다른 악마(그 악마는 예거 마이스터는 감기약이니 괜찮지 않겠냐고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에게 패배하여 술을 마시고 바이러스에게 부활을 당해서 또 지옥과 땀범벅인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같잖은 뽕에 취해 학부 4학년 때 스마트폰을 스스로 해지하고 옛날 폴더폰으로 생활한 적이 있다. 첫 한달은 지옥과 같았지만 기실 누구나 적응은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로우를 어설프게 따라한 그 1년의 시간 자체는 단 하루를 빼고는 스마트폰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2학기 막바지 초겨울에 영문학과 수업을 청강하다가 나는 갑자기 연고도 없는 답답함을 느껴서 고속터미널에 가서 강릉에 갔다.
가서 택시를 잡아 타고 아무 바다나 가달라고 했더니 택시기사는 내가 실연에 빠졌거나 사업상의 실패나 수험에서 좌절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나를 다독였다. 당시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어느 해변에 가서 편의점에서 맥주를 가득 사서 어두워질 때까지 걸으며 맥주를 마시고 대충 막차가 있을 것 같은 때에 터미널에서 정말로 막차였던 버스를 1시간 기다린 뒤에 탔다. 밖은 더럽게 춥고 차는 만차였고 안에는 히터때문에 숨이 막혔다. 눈이 와서 차가 더럽게 막혔다. 옛날에 쓰던 폴더폰을 그대로 쓰는 상태였고 그 배터리는 거기까지만 참아줄 수 있었다.
낯선 잠자리를 싫어하는 나는 잠의 세상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대용으로 들고 다니던 모니터 없는 만원 짜리 MP3도 그 사건 이후에야 구비했었다. 이제 나는 어떠한 미디엄도 없이 나 혼자로서 히터로 숨막히는 만원 버스에 갇혀서 8시간인지 10시간인지 모를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그건 정말 강요되고 절망적인 명상이고 묵상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 많지는 않아도 얼마간의 시련을 겪었다지만 지금와서 보면 그때의 어려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으니 이따금씩 생각나고 나는 절대로 소로우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한다. 아직 허영은 조금 남아서 테드 카친스키를 좋아하고 GPT 같은 것들에 의존하는 이들을 속으로, 겉으로 비웃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