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지금까지 보여주시는 과분한 관심과 염려에 감사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술이라던지 식사라던지 자리를 거절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어제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렸죠,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다고요.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작년 이맘때에 죽었습니다. 확실하고 철저히, 죽었습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작년 이맘때에도 말씀을 드려서 잊지 않았다면 아실 겁니다만, 그건 농담이나 문학적 서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고 정말로 실제의 서술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다른 저로 교체되어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다른 행위를 하고 다른 얼굴로 지내고 있습니다. 일례로 눈은 죽은 물고기 눈을 하게 되었고 강퍅하고 강강하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몸과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선배 뿐만 아니고 다른 선배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사람의 배경지식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일정부분 굴절부분을 달리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선배도 그렇고 그들도 작년 저의 죽음에 대해서는 인정하시지 않으시겠죠.
나는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인간 군상들의 대부분은 죽을 때까지 딱 자기 관짝 만큼의 너비와 깊이의 세계를 알고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찍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연히 이런 말을 굳이 입밖에는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관짝만큼의 분수를 알지 못하고 닭장 속 장닭같이 무지에서 오는 자부심이라던지, 스페인 인들이 상륙하기 전 남태평양 군도의 추장이나 추장의 가족들이 가질만한 오만함을 본다면 나는 기꺼이 가학적으로 그것을 박살내기 위해 닭장이나 관짝의 메타포를 야구 배트처럼 꺼내어 스윙을 한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럼에도 관짝은 메타포를 넘어 하나의 진리로서 그들에게 기능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되도록이면 박살내기로 한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는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무래도 아일랜드를 미워하게된 것 같다. 나도 어느정도는 공감하고 일체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