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꿈, 꿈, 여행

by Josh

오랜만에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 지금까지 내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교류를 끊어온 여러명 중 몇 명이 나에게 찾아와 원망과 힐난을 했다. 그들의 비난의 맥락으로 봤을 때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과 술을 마시고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상태로 내가 혐오하거나 경멸해서 교류를 끊게 된 그들의 행위를 각각 하고 숙취에 시달린 채 깨어나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몹시 비참해지고 기억이 없는데 그들의 비난 섞인 증언을 완전히 믿어야 하나 의심하고, 간간히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에서 그 증거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변명인지 실토인지 모르게 나는 지금 칼날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고, 오늘과 내일과 어제가 분간이 가지 않을 뿐더러 내가 나인지도 모르겠고 시작이 종말인지도 종말이 시작인지도 모르겠어서 힘들다고 구질구질하게 떠들었다. 그리고 아직 어두컴컴한 밤 눈이 떠졌다. 식탁에 가서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시간을 조금 들여가며 그것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나에게 인지시켰다. 누구나 감상적이 되는 새벽녘의 밤이었지만, 여전히 그들이 그립진 않았다.


내가 꿈을 꾸는 날은 살찐 택배 배달원의 비율 만큼이나 적다. 아니, 꿈을 인지하는 날이 그렇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꿈에 예지력이나 어떤 계시와 같은 현묘한 의미가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꿈을 기억해도 대수롭지 않게 잃어버리기 일쑤다. 다만 그 형태와 윤곽에 약간의 음영만 바뀐체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란 대개 내가 알몸으로 밖을 나다닌다던지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아 몹시 불안한 상태 두 종류가 많다.


전자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타인들에게 떠드는 것들이 너무 과해서, 떠들지 말아야 할 것이나 어떤 건 어떤 사람에게는 떠들면 안되는 것인데 나도 모르는 새 떠든 것인지 점검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나의 실책에 대한 나의 무의식적인 경고나 힐난일 것이다. 후자는 보통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몹시 싫어하지만 해야만 했던 일들이 나온다. 수능이라던지 대학 졸업 같은 것들. 마찬가지로 나는 기분나쁘게 깨어나서 실제로 옷을 벗고 다니지 않았따는 것, 그리고 지금은 수능이나 학부 공부를 할 필요도 없고 일어나서 묵묵히 하루에 8시간을 죽이고 오기만 하면 되는 상태인 것을 천천히 인지한다. 그것들도 그립지 않다.


다음주에 가는 따뜻한 나라는 아주 멀어서 가는데만도 하루 반 씩이 걸린다. 나는 일주일동안 거기에서 밥을 먹고 물고기를 보고 산호수에 몸을 긁히고, 부주의하게 선크림을 발라 얼굴에 얼룩을 만들거나 입술을 태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어딘가 결여되어있어서, 그 보름에 달하는 여정은 내 통장이나 카드에서 빠져나갔거나 빠져나갈 숫자정도 이외에는 내 감정에 파동을 남기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 나와 유전자건 생김새건 피부 색깔이건 사용하는 언어건 나를 이루는 것들과 교집합이 적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는 건 항상 본능적으로 좋아해왔다. 나는 나를 잘 구분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해서 그런 식으로라도 내가 선명해지는 걸 묵시적으로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개보다 조금 많이 바다 속에 있기 위해 도수 수경을 새로 샀다. 사진 따위도 찍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도 그것을 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일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빠져나갈 숫자에 대한 인지와 나를 알거나 비슷한 인간들과의 대오에서 잠깐 열외되는 것 정도의 은밀한 즐거움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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