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이야기

by Josh

엊그제 전 대통령 중 한명이 책읽기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아 구세대의 세계관에 갇혀 있어 좌경용공이니 반국가세력이니 하는 말을 아직도 떠들고 있다고.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몰라도 독서에의 당위성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내 생각과 비슷하다.

하루키나 에쿠니 가오리나 학부에서 리비도가 충족되지 못돼보이는 중년의 남교수나 하는 말의 본질은 내 이해로는 이렇다.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서 다른 세계의 나로 순간이동을 시켜주는 비히클(Vehicle)이다. 내가 살며 유무형이든 육체나 정신적이든 긍정적이나 부정적인 경험과 그 기억으로 구축해둔 세계는 영원히 불완전할 것이다. 그리고 방치해두면 저수지의 물처럼 어둡고 축축하고 물비린내를 내뿜게 되고 만다.


이야기는 그런 나로 하여금 친절하게 나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 있고 새로운 가치나 상념이 떠다니는 세계로 데려다준다. 다만 불친절하게도 우리가 익숙하게 또 그리고 편하게 해온, 수첩 들고 받아적고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행위는 돕지도 거들지도 않는다. 세계에 이동해온 우리는 혼란스럽고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스스로 의미를(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해석하고 좋든싫든 이질적인 것들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그러면서 저편에서 보이는 내 세계가 실은 조금은 굴곡지거나 요상한 안개에 껴있었어서 사물의 색상이 조금은 원색과 달랐다는 걸 알게 되고 돌아가게 된다면 렌즈를 교정하고 명도나 채도를 조정하자고 다짐한다.


이야기는 인질극을 벌이는 납치범도, 인간사냥을 해와서 자신의 영지에서 영원히 소작할 것을 요구하는 악덕 봉건 영주도 아니다. 자연스럽고 적확한 때가 되면, 그저 예의 비히클(Vehicle)로서 우리를 원래의 세계로 묵묵히 데려다줄 뿐이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책을 덮는 순간이 되거나 하품을 하며 파스타나 삶으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백히 나의 세계는 미세하게 조정되었고 나는 무사히 돌아와 있다는 것이겠지.


그러나 조심해야한다. 저수지의 물비린내 나는 수초섞인 물이 되기 싫다고 해서 조급하거나 쉽게쉽게 불완전하고 불온한 내 세계의 상실감을 채우려다간 이야기의 탈을 쓴 '다른 것'에 몸과 마음과 나의 세계를 교정은 커녕 통째로 빼앗겨버리고 만다.


그것들은 비히클(Vehicle)인양 적당히 노란색으로 칠한 스쿨버스의 제복 입은 운전사처럼 능숙하고 자연스레 우리를 태운다. 정류장도 그럴듯하게 세워놓고 말이다. 그리고 하차한 곳에서 그것은 불친절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친절히도 내 안의 규준에서 수정하거나 삭제하거나 넣을 것을 집어주고 수첩을 들고 필기하고 순전히 외우면 된다고 속삭인다.


그것은 때때로 나치즘이 되어 선량하고 신실하고 자상한 부모님이자 예의바른 자식이었던, 스쿨버스의 학생들이 특히나 열성적으로 유대인들을 잡아 죽이게도 했고, 웃으면서 만주와 중국과 남양군도와 조선에서 군도로 사람들의 목자르기를 경쟁적으로 하게 하기도 했고, 일면식도 없는 코폴라 일가의 임신한 부인과 태아와 친구들을 참혹하게 도륙내게도 만들었다. 그저 '편하게' 모범생같이 주입하라는 것을 잘 주입하고 행했을 뿐인데. 아, 생각해보니 탈레반이란 고유명사는 파슈툰어로 '학생들'을 의미한다고 하더랬지.


사실 위는 극단적인 예시들일 뿐이고 저런 '학생들'은 우리 주위에도 넘쳐난다. 내가 속한 멍청하기 짝이없고 비루한 직장에서도 홍위병들과 친위대들이 열성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한다. 또 이 한겨울에도 한쪽에선 태극기를 들고 모여 분신자살을 하고 고개가 갸우뚱할 정도의 분노를 가지고 떡국에 절을 하기도 하며, 다른 쪽에서도 아사하라 쇼코를 닮은 사람의 음모론을 암송하고 법을 어기자 그 법을 없애는 짓을 보고도 변함없는 흠숭을 보낸다. 모두 이야기의 탈을 쓴 어떤 것에 납치된 학생들일텐데.


각설하고, 난 그 전 대통령이 지금도 책방까지 운영할 정도로 애독가인걸 안다. 정치적 견해를 차치하고서도 새삼 본인의 전, 후 대통령이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끌어내려진 것에 비해 온전히 임기를 마친 것도 대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서두에 인용한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러면서 추천한 책이 자기 연설 라이터의 책이라니.. 그건 좀 많이 짜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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