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먹는 것, 집, 뒤통수

by Josh

SFC 카노니코는 아기 머리만한 배를 껍질을 까지 않은 채 우적우적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디팩에 큼지막한 배들을 가득 쌓아두고 아무도 껍질을 까먹으라고 얘기해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물렁한 표주박 모양의 서양 배는 껍질째 먹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사실 카노니코와 오래 보지도 않았고 많이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친절했지만 과묵했고 나도 붙임성이 없었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내 기억에 황금빛 배를 우적우적 먹는 대머리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사실 껍질을 까야 먹을 수 있다는 법도 없다. 나는 배를 취식하는 카노니코의 모습을 본 이후로, 그의 기억이 머리를 순간 스치고 마침 집에 배가 있을 때마다 그 대머리 중사처럼 배를 우적우적 껍질째 먹곤 한다. 오늘도 사실 그렇게 먹었다. 다만 오늘은 우적우적이 좀 부족해서, 냉동 블루베리를 꺼내 어적어적 먹었다. 까만 구형의 딱딱한 것을 그릇에 소리나게 담아 먹을라치면 마치 개사료를 달게 먹는 기분이다. 아무렴, 나는 배도 껍질째 먹는 극악무도한 인간인데 상관있나 싶다.


어제도 오늘도 집에 혼자다. 어제부터 집에 되는데로 처리곤란으로 남은 것들만 골라 먹어치우고 있다. 냉동실을 열고 마음먹고 오랫동안 냉기와 벽돌같이 딱딱하고 차갑고 때때로 날카로운 덩이들을 파헤치며 먹을 것이되 집안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온 것을 찾는 것, 팬트리의 태생적인 일시성-꺼내고 꺼지라는 무언의 압력-을 견디며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난 것을 찾아내는 일은 의외로 꽤나 높은 인내심과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몇개를 찾아내 먹었다. 기한이 지나간 냉동식품과 통조림. 기실 이것은 근면함에 대한 허영심과 은근한 자기파괴적 욕구를 채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오랜기간 잊혀진 것들에게 그 존재 의미를 달성케 함으로써 그것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자비를 베푸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자위한다. 있을지 모르는 리스크와 부당함의 호소역은 나의 아직은 새빨간 내장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닿는 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무슨 짓을 해도 내 뒤통수를 볼 수 없음에 때때로 한탄했다. 심지어 그것이 너무 억울해 죽어버리고 싶었다. 폰 카메라가 나오고 그런 일은 없게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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