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를 읽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내 두뇌의 용량에 맞게 해독해내는 작업 같기도 했다. 천재가 예쁘게 글을 쓰려고 하면 여기까지 쓸 수 있구나, 싶다. 결국엔 땡중 하나가 금각사에 불지르는 신문 기사 한 절이었을 텐데, 그걸 더 농밀하게 뻥튀기다니, 역설적인 마법이다. 다만 절정에서부터 결말은 감히 느끼기에 실망스러웠다. 불을 지르고 산에 약과 단도를 들고 올라갔으면 장렬하게 거기서 죽었어야지. 안톤 체호프였나, 극에 총이 묘사되면 발사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말이야. 약도 삼켜지지 않았고 칼도 혓바닥으로 맛만 보이고는 아무것도 베거나 찌르지 못했다. 그렇다, 이제 나는 절세의 천재의 불후의 명작에도 이렇게 생각해 버릴 정도로 갈 때까지 갔다.
A와 고속터미널역에 갔다. A는 잔뜩 옷을 사고 나는 양말 두 켤레를 샀다. 갈 때마다 점점 사람들도 옷들도 늙어가는 기분이다. 퉁퉁부은 붕대를 감은 성형 관광온 외국인들은 여전히 간간히 보였다. 이번 고터도 내가 겪은 여러번의 고터와 섞여 결국 녹아 없어질 터였다. 아, 하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비연속적으로, 한 대여섯번은 문득 생각이 날 거다. 여자 옷을 파는 가게였는데, 틀어 두던 노래가 일본어 힙합 곡이었고, 옷가게라기보다 동네 도서관에서 특수직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생긴 외모와 행색의 점원은 공동번역판 성서를 골똘히 읽고 있었다. 그건 좀 초현실적이었다.
제빵기를 살까. 기름을 두르고 달군 후라이팬 위에 거칠게 박살낸 마늘을 떨군 순간부터의 얼마간의 순간은 내가 세상에서 좋아하는 몇안되는 것 중 하나다. 청교도스럽게 거친 통밀가루와 물과 소금, 이트로만 반죽하고 굽는 것도 그런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빵기 광고 영상에서 반죽이 철퍽이며 제빵기 틀 속에서 도는 것도 묘한 흥분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이번 분기 복지포인트가 얼마가 남았더라.. 사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수적이고 돈 아까운줄 모르고 또 자기합리화에 능한 내가 그걸 처박고 마늘이나 볶는 것으로 만족해버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