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꽤나 열심히 다니던 성당을 충동적으로 다녀왔습니다. 거기엔 내 유년시절의 상당부분이 묻혀있습니다. 지금보다 사람들은 좀더 순수하거나 무지해서 성당이나 교회에 좀더 헌신적이었고, 조막만한 동네 성당의 어린이 미사는 연일 성황이었습니다. 어린이 신자용 주보까지 매주 발행해서, 꽤나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신부님 미사 시중을 드는 복사라는 것도 했어서, 사람도 적고 헌금도 안내는 평일 저녁미사나 새벽미사부터 청년부 미사, 주중에 제일 사람이 많은 연중미사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있다보니 때마다 낭독하는 성서의 조각조각들은 여전히 제 무의식 속에 박혀있겠지요.
성당은 너무 작아져 있었습니다. 본당 건물도 만남의 광장도 사제관도 성물방도 교리방도. 너무 작아져 서글퍼질 정도였습니다. 아니면 제가 커버렸던가요. 본당 제대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머리뼈 일부인가를 성유물로 모셔두고 있는데, 그건 미사시간이 아니어서 다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계기로든지 우울해 소라게처럼 집에 쑤셔박혀 할수있는 한 오래 처박혀 있던 때에, 동네 마트들의 전단지 읽기는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색감은 회색의 저와 대조되게 달큰하고 선량하고 성실한 느낌을 주고, 날짜마다 정말 특별하게 나에게만 선사한다는 듯한 싱싱한 채소들과 고기와 물고기와 각종 공산품들도 우직하고 믿음직하게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김장일, 창립기념일, 시장안정화 등등 각각의 이유들로 하는 파격 할인들로 전단지들은 각종 축제들의 초대 티켓 같아보이기도 했습니다. 마트마다 전단지를 만들고 또 그것들을 인쇄하는 사람들은 따뜻하고 세상을 긍정하고 작은 일에도 호들갑으로 느껴질 정도로 감사함을 아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거지 같은 부서에 처박혀 거의 쿠팡맨에게 제 삶의 애로사항을 의탁하지만 말입니다.
어젯밤에는 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땐 참 분하고 억울하다. 꿈으로 기어 도망가서도 내가 여전히 우울하거나 편집증 같은 고통을 겪거나 하면 나는 좌절한다. 하물며 일이라니. 초과수당이라도 청구해야 하는데. 아니, 꿈까지 출장 가서 일했으니 출장수당도 받아야 한다. 아니 장거리니까 일비와 식비와 숙박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