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금요일에 혼자 집구석에 있는 술들을 모아서 되는데로 마시고 울었다. 다음날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800km를 넘게 운전했다. 나는 장거리운전에 피로를 잘 느끼지 않는다. 불면증의 탓으로 졸음운전의 위험도 없다. 밤이나 빗길 운전에도 심적인 부담감 또한 없다. 운전 중엔 보통 양보를하고 조심하는 쪽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장거리 운전은 내게 일종의 명상 같은 효과를 준다.
앞차와의 거리나 신경쓰고 차선 변경 전 뒤의 차에게 주의깊게 알려주는 일을 제외하면 나는 명상중인 사람의 머리가 된다. 사방은 어둡고 차가운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는 명상을 방해하는 이상의 언어적 입력을 주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내리면 그곳의 음식을 주의깊게 먹고 같은 언어를 다른 억양으로 발화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곰씹는다. 그리고 얌전히 일요일 밤에 돌아와서 다시 노예가 될 준비를 마친다.
같은 이유로 지난주 목요일엔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많이 기르기 위해서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심드렁한 요구를 미용사는 대충 알아듣고 그에 맞게 바리캉을 사용치 않고 잘라주었다. 나는 그날 같은 이유로 퇴근 때까지 섭식없이 카페인만 들이붓다가 저녁 늦게 미용실에 갔다. 그것은 마치 열반에 들기 전 수개월간 곡물 없이 솔잎 따위나 방부액 같은 효과를 내는 진액만 마시다가, 법복을 입고 구덩이에 생매장되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울을 울리다 그대로 박제되는 등신불과 같이 느껴졌다.
미용사가 내 옷 위에 올리는 가운은 법복이고, 나는 곡기를 끊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머리를 다 자르고 머리를 기르기 위해서는 가르마를 어찌저찌 해야한다는 어드바이스를 듣고 안경을 다시 써보니 나는 등신불이 아닌 그저 등신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