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주로 차를 끌기보단 걷는다. 이 외곽도시도 걸으면 많은 횡단보도를 지나거나 신호에 걸려 기다린다. 그러면서 내가 최근에 들인 습관은 보도를 걸으며 우회전을 하려고 대기하는 차량을 위해 횡단보도에서 벗어나 길을 건너는 짓이다. 나는 그러면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고 차량은 적법하지 않게 길을 건너는 나를 배려할 의무 없이 갈 길을 가면 되지 않는가. 내 불순한 의도를 이해하는 똑똑한 차는 길을 서둘러 가고, 멍청한 차는 그냥 있는다. 나는 마음속에서 룰을 어기는 것에 대한 근원적 쾌락으로 득의 만면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인간은 무의식중에 뭐라도 숭배하고 맹종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듯 하다. 그리고 그 트리거를 건드리는 방법을 부지불식간에 혹은 학습 및 습득한 인간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각종 사이비 교주들이 되는 거고, 그럴 그릇은 안되는 인간들은 물건이나 팔고 그릇에 맞는 걸 챙겨가고, 선한 인간들이 그런 능력을 가지면 성자 성인의 반열에 드는 거겠지. 나는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한다. 의심이 많고 대가리를 자진해서 박을만한 그 어떠한 것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개 어딜 가든 검은 양이다. 다만 어느 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어린양의 흰 털가죽을 주워서 뒤집어 쓰고는 있다.
엿같거나 억울한 상황에 처해있으면 그것을 무미건조한 글로 기술해둬보는 건 크게 도움이 된다. 내가 이 금언을 어디서 들었는지, 흘러가는 실없는 라디오 진행자의 말이었는지 정신과 의사의 말이었는지 쓸데없이 탐독했던 마음에 대한 책들이었는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좆같은 집단에 강제로 들어와 병신과 등신들과 살고 나도 머저리가 되어가며 신세한탄이나 하며 죽음이 마렵다'라고 내 상황을 기술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브라질 책팔이인 파울로 코엘료가 유행시킨 아랍어 금언 '마크툽'과도 대충 상충되는 말이다. 모든건 쓰여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