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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Aug 18. 2023

내 첫사랑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이었다

첫 만남

 4년 사귄 그와 헤어졌다.

 항상 표현을 하고 또 받기를 바라는 나와 달리 그는 표현을 아예 하지 않는 성격이다. 답답하고 화가 날 때마다 난 헤어지자고 했다. 그는 늘 붙잡으며 미안하다고 변하겠다고 했다. 그 매달림에서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사흘 전, 언제나처럼 매달리던 그가 '알겠다'고 했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돌이켜 그를 붙잡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너만 가족들이 반대하는 줄 알아? 우리 엄마도 너 만날 거면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거 알아? 너 아니었으면 난 벌써 돌아갔어. 이 생판 다른 나라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노가다 뛰면서 살았어. 너 하나 때문에."


 그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마치자마자 신림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 두 시간 동안 울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사실 너 친척 결혼식 사진 봤을 때 현타 왔어. 나랑 결혼하면 너는 그런 축복받는 결혼을 못하잖아. 네가 잃는 게 너무 많아. 너 인생에 뭐가 이로운지 잘 생각해 봐."


 버스정류장으로 날 데려다주며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12월에 다시 올게. 그때도 우리 마음이 그대로면 운명으로 받아들일게."



 12월까지 4개월이 남은 이 시점에서 지난 4년을 돌아본다.


 배틀 그라운드. 스물한 살 여름에 빠져있던 게임이었다. 펜팔로 친해진 외국인 친구(편의상 A)가 있었다. A와 함께 게임을 했었다.


 어느 날 각각 친구 한 명씩 데려와 네 명이서 게임을 했다. 난 내 절친을 데려왔고 A도 자기 친구를 데려왔다. 그게 그였다.


 그는 말이 없었다. 중요한 상황에만 얘기하고 몇 시간 동안 게임 하는 내내 마이크를 거의 끄고 있었다.

 

 또 어느 날 모바일 배틀 그라운드에 접속했다. A가 다른 누군가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도 접속해 있었다.


 왜 A 다른 사람이랑 하고 있어? 너랑 둘이 안 하고.


 내가 그에게 물었다.


 A 여자친구 있는 거 몰랐어?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 그에게 번호를 땄다. 당황한 거 같아 보였지만 번호를 줬다.


 그렇게 연락을 이어갔는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네 시간 동안 전화를 하곤 했다.


 특유의 순수한 목소리가 날 빠져들게 했다. 몇 주간 매일 연락을 하다가 결국 만나기로 했다.


 그는 전주에 살고 있었고 우리 집은 안양이었다.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말에 친구에게서 노란 후드티를 빌려 입고 갔다.


 the gym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그를 천안역에서 처음 만났다. 갈색 머리, 갈색 눈썹, 갈색 눈동자. 특히 양 눈 동공에 있던 점을 신기하게 봤던 걸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를 보고 가장 처음 한 생각은 키가 크다는 점이었다. 167센티미터인 내가 옆에 서도 큰 키였다. 무척 잘생긴 얼굴이었다. 사람이 뭐 있나, 잘생겨서 좋았다.


 그는 많이 부끄러워했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난 뜬금없이 가방에 있던 잠옷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내 잠옷이다?"


 그때 그가 코를 찡긋거리며 순수하게 웃었다. 그때 그가 본격적으로 좋아졌다. (나중에 말해주길 가짜웃음이었다고 했다)


 "뭐 먹을래?"


 내가 물었다.


 "난 돼지고기만 아니면 돼."


 그땐 우리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그의 종교를 몰랐다.


 똑바로 좀 말해봐, 못 알아듣겠어. 내가 말했다. 말이 안에서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고 발음이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이젠 잘 알아듣지만 그땐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꼬꼬아찌. 우리가 갔던 치킨집이다. 그가 치킨을 좋아한다고 했다. 바삭바삭한 치킨을 생각했던 그 앞에 나온 건 훈제 치킨 요리였다. 난 맛있었는데 그는 먹지 못했다. 결국 두어 개만 먹고 다 남긴 후 나와버렸다.


 갑자기 저녁에 이루어진 만남이었기에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있었다. 나는 안양에 살고 그는 그때 전주에 살고 있었다.


 "어떡하지?"


 "나는 호텔 잡아서 하루 자고 갈 거라 괜찮아."


 그가 말했다. 난 집에 어떻게 올라갈지 생각하다 고민 끝에 물었다.


 "나 좀 얹혀있으면 안 될까?"


 그가 순수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던 게 반, 갓 스무 살이 넘어 철이 없었던 게 반이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데 접촉사고가 났다. 뒤에 오던 승용차가 우리가 탄 택시를 박은 것이었다. 기사 아저씨는 돈을 받지 않을 테니 그냥 내리라고 했다.


 호텔값을 반씩 내자는 내 말을 거절하고 그가 비용을 지불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의 나라에선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다 내야 한단다.


 목이 말라서 오렌지 주스를 샀고 생전 처음 본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웠다. 몸을 일으켜 오렌지 주스를 마실 때 그가 말했다.


 "나도 한 입만."


 난 다가가 입에 머금은 오렌지 주스를 넘겨주었다.


 "맛있다."


 그가 대답했고 난 다시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그가 나중에 말해주었다.


 두 번째 만남에 그는 청남방을 입고 왔다. 영화를 보러 들어갈 때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김아중이 나오는 한국영화였다. 외국인이 자막도 없는 한국영화를 보러 들어오니 신기했나 보다. 그 정도로 그는 한국어를 잘했다.


 그날 내가 카톡으로 사귀자고 말했다.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좋다고 했다. 시월 사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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