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블루-파란 섬마을에는 없는 것들

시내로 목욕탕 가던 날

by 유니크한J

어른들의 세계에는 아이가 묻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그 이유들이 동생과 나를 복잡한 도시에서 멀리, 바다가 품은 섬마을로 데려왔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전학 전날, 친했던 친구와 울먹이며 나눈 통화가 지금도 뾰족한 조각처럼 남아 있다.

바다가 참 예쁜 어촌 마을에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늘진 마음으로 섬 마을의 커튼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기분에 따라 물빛을 바꾸는 바다의 얼굴은 대부분 코발트블루의 맑은 색이었다. 물결 위에 흩뿌려진 윤슬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아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른 새벽을 깨우는 어부의 배에는 하루치의 고달픔을 다독이듯 펄떡거리는 바다 보석들이 그득 담겨오곤 했다. 할아버지의 작은 통통배와 통발에도 하루치의 안도와 평화가 담기곤 했다. 장어가 잡히는 날에는 빨간 장어국이 저녁상에 어김없이 올라왔다. 가자미가 잡히는 날은 할머니가 미역국을 끓여 주셨고, 어쩌다 운 좋은 날 바다가 문어라도 내어주는 날에는 문어숙회에 초장 하나면 그날 저녁 풍경은 모든 근심을 잊게 했다.

자연이 내어주는 선심으로 고즈넉한 섬 마을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의 가슴에 풍족감이 안겼다. 그러나 없는 것도 많았다. 햄버거나 피자 가게는 물론, 빵집도 영화관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갈 흔한 목욕탕도 없었다. 할머니 집에서는 겨울 목욕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봄, 여름에는 샤워를 하기가 괜찮았지만,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에는 비싼 기름보일러를 오래 켤 수 없어 차가운 욕실에서 목욕하는 게 커다란 고역이었다. 그런 이유로 할머니는 우리를 한 달에 두 번은 목욕탕에 데리고 가셨다.

시내까지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은 갈아타고 나가야 했다. 바다가 뿜어내는 찬바람 속에서 하얀 입김을 불어가며 할머니의 등 뒤를 보며 걸어갔다.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걷는 어린아이였고, 할머니는 너른 바다의 반쯤을 차지하는 든든한 존재였다.

목욕탕의 김 서린 문을 열면 따뜻한 온기가 우리를 반겼다. 비누 향을 머금은 뿌연 수증기가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면 모든 게 흐릿해졌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도 이 날만큼은 함께 흐릿해졌다.

나는 목욕탕에 가는 날을 좋아했다. 냉탕은 우리에게 최고의 물놀이터였다. 튜브나 구명조끼가 없어도 괜찮았다. 작은 대야 두 개를 서로 맞물리게 덮어 야무지게 잡으면 목욕탕 튜브가 만들어진다. ‘목터파크’에 입장하면 대야 경쟁에서 눈치 작전을 잘 써야 동생 것, 내 것 두 개를 만들 수 있었다. 물놀이가 과해져 수영 대회라도 열리는 날에는 목터파크는 때때로 참교육 현장으로 바뀌곤 했다.

할머니는 파란 때 타월로 우리의 가죽, 아니 때를 박박 밀어주셨다. 마치 거친 파도가 내 등위로 찰싹이며 밀려왔다가 할머니의 깊은 한숨과 함께 쓸려가는 느낌이었다. 때때로 할머니의 땀인지 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내 등에 툭 툭 떨어지곤 했다. 작은 물방울은 마음에 거친 파동으로 떨어졌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물방울의 정체는 뜨거운 눈물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파도가 철썩이는 고통을 참아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바로 옆 중앙시장에서 고소한 찹쌀도넛을 사 주셨다. 빵집도 드물던 시절 기름 냄새 베인 도넛이 어찌나 맛이 쫀득하고 단지, 그때 처음 알았다. 고통 뒤에 오는 열매가 이렇게 달콤하다는 걸.

목욕탕을 다녀온 날에는 나와 동생의 피부가 복숭아빛으로 발그레했다. 할머니의 손 끝에서 피어나던 과도한 사랑 때문인지, 기름 베인 도넛으로 채워지던 충족감 때문인지, 겨울 날씨의 온도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장난감도 게임기도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 목욕탕 나들이는 우리에게 놀이동산 가는 설렘 그 이상이었다.

할머니는 연세가 들어도 등이 굽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파란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던 하얀 등대 같았다. 그 섬마을에는 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치 내 어린 시절 혹시라도 그늘진 구석이 생겨날까 봐 작은 틈새까지 와닿던 할머니의 온기와 사랑 같았다. 작정하고 비추며 스며드는 빛 앞에 어둠도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등대 같이 함께해 주셨던 할머니 덕분에 나는 길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등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교직 생활로 바빠져 할머니가 계시던 섬마을 방문이 뜸했던 어느날, 그 온기가 그리워질 무렵 그날은 학생들과 서울 출장 중에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마치 어린날 바다내음을 품고 피부에 다았다가 서둘러 달아나던 섬마을의 공기처럼 차가웠다. 이제는 우리 반 학생들이 내 등 뒤를 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쓰러지셨어요! 목욕탕에서요.”

할머니의 작은 수첩에는 내 번호가 1번으로 적혀 있었다. 쓰러지신 할머니를 발견한 분이 그걸 보고 다급한 전화를 주셨다. 우주가 무너져 땅속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출장 일정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놀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할머니께 달려갔다. 다급한 연락을 받고 부모님도 급히 오셨다.

목욕탕 안, 등받이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서 할머니는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그 길로 더 이상 나에게 찹쌀도넛을 사 주시던 할머니, 도시락을 싸 주시던 할머니, 학창 시절 부모님의 빈자리를 아낌없이 채우며 커다란 우주가 되어 주셨던 할머니는 깨어나지 못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우리들의 푸른 밤은 눈물 섞인 그리움으로 하얗게 번져갔다.

이제 그 섬 마을에는 제법 많은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역을 대표하는 세련된 카페도 자리 잡았고, 썬셋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도로도 해안 산책길도 멋지게 포장되어 나를 반겼다. 그 어떤 시절보다 북적이고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나를 반기는 할아버지의 통통배도, 손녀의 등을 밀어주시던 할머니의 손길도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바다를 볼 때마다 때때로 마음이 저릿해진다. 코발트블루의 물빛이 반짝이면, 그 위에 할머니의 손길과 웃음이 번져온다. 그 빛은 여전히 내 어린 시절을 품고, 나를 품는다.

푸른 물빛에는 강하지만 마음은 여렸던 할머니의 눈물이, 손녀들의 학창 시절 울타리가 되어 준 단단함이, 애달픈 마음을 달래던 할머니의 노래가 진한 여운으로 포개어져 있다.

그 물결 위로 할머니의 금실 자수가 흩뿌려지는 날에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유난히 더 다정한 울림으로 밀려온다. 어린 꼬마가 할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걷던 시절의 안도감이 안긴다. 파도 소리에는 단단하지만 다정했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함께 묻어와 내 마음을 두드리고 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