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한 약속
가출했던 소년이 학교로 돌아왔다. 2017년 겨울 방학식, 그날따라 마무리할 공문도 많았고, 학생들 학기 마무리로 종일 부산스러웠다. 졸업 후 카페 실습을 앞둔 아이와는 교실 한쪽, 직업 준비공간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막바지 연습을 마쳤다. 가출 전적이 있던 녀석에게는 방학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지내다 오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고 받아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일과가 마치는 음악소리와 동시에 소년과 소녀들은 빠르게 교문을 빠져 나갔다. 우산이 없는 아이들 더러는 책가방을 머리에 덮어쓰고 빗물을 튀기며 뛰기도 했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비를 보고 당황하던 아이 두 손에 교실에 있던 초록색 체크무늬 우산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학 때는 사고 좀 덜 치자! 알았지? 새 학기에 건강한 얼굴로 봐."
그렇게 종업식은 끝이 났다. 한 학기 동안 쉬지 않고 돌아간 커피 머신은 고장 한 번 없이 아이들의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청소를 신경 써서 꼼꼼하게 마쳤다. 제빙기까지 깨끗이 비우니, 한겨울인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갔고, 조용해진 교실에 나만 남았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도 좀 잦아진 듯 조용했다. 집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이 멈춘 건, 유난히 지저분하게 보인 내 책상과 서랍 때문이었다. 필요 없는 서류, 과자 껍데기, 뜯지 않은 보험 안내서, 철 지난 교육 자료들…
‘개학식 날 정리하지 뭐.’
그렇게 문을 잠그고 돌아섰다. 아이들의 웃음이 빠져나간 교실의 고요는 곧 내 삶의 또 다른 소나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웬만해선 꺼지지 않는 비상구 불빛조차 꺼져 버린 날이 있었다. 그 해 긴 겨울의 끝자락 가벼운 안압 수술이 예고 없는 불가항력 사고로 이어졌다. 모든 세상이 암전 되면 이런 느낌일까? 모든 수술과 치료의 과정이 끝난 뒤,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더 이상 시력 회복은 어렵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시신경을 되살리는 건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허공을 때렸다. 뇌파를 이용해서 사물을 볼 수 있는 기술이 연구 중이라는 설명이 계속되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면은 꺼지고 소리만 남은 드라마가 내 앞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암흑 선고 후 의사의 몇 마디가 더 이어졌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쫓아가고 있었다. 방학식 날 귀찮아서 정리하지 못한 내 책상과 서랍 속 잡동사니들이 떠올랐고, 혹시나 집 안 구석구석에 흘러간 옛사랑에게 쓴 손 편지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집안 여기저기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성인이 된 나를 녹내장이라는 안질환은 계속 따라다녔다. 안약과 간단한 시술로도 그럭저럭 잘 달랠 수 있었고, 일상의 큰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휴일이면 남편과 자전거로 강변을 달렸고,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를 보러 가고, 하루를 마무리 짓는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상이 내 삶의 낙이었다.
이제 더는 할 수 없다는 말이 허공을 메웠다. 파란 하늘, 연둣빛 나무, 발그레한 노을은 모두 상영 금지된 풍경이 되었다. 나의 당연했던 총천연색 세상은 언제 열릴지 모르는 타임캡슐 속에 모조리 갇혔다. 불가항력이라는 불청객은 그렇게 우리의 모든 반짝임을 집어삼켰다.
얼음 같던 시간을 깨뜨린 건 남편이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표정은 볼 수 없지만 그도 끓어오르는 슬픔을 겨우겨우 집어삼키는 듯했다.
“선생님은 아내와 제가 눈으로 함께 보며 나눌 수 있는 행복을 빼앗았습니다.”
남편은 치료 과정에서 차마 뱉지 못했던 몇 마디를 의사에게 던진 후 내 손을 끌고 나왔다. 피부에 닿는 서울의 겨울은 우리에게 그렇게 잔혹했다. 발밑에 밟히는 눈의 촉감은 시리고, 유난히 거칠었다.
남편의 한 손은 의료사고로 실명한 나의 손을 잡았고, 나머지 한 손은 병원 생활에 비해 너무도 작고 초라한 초록색 캐리어를 끌었다.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마냥 우리의 걸음은 조심스러웠고, 작은 단차 하나도 큰 산처럼 다가왔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복잡한 도심 속에서 우리 둘의 뒷모습만 유독 느리게 재생되는 듯했다. 초록색 캐리어만 거친 숨소리를 몰아 쉬며 눈길 위를 속절없이 폴짝거렸다.
계절은 빠르게 변해갔지만 우리에게만 유독 겨울은 느린 걸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달라진 일상을 하나씩 받아들여야 했다. 그 후로 내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틈이 날 때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서랍 속 잡동사니를 정리한다. 혹시 내일 이 자리에 오지 못하게 되더라도, 누군가 대신 서랍을 열어도 찡그릴 일은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나는 오래도록 내일이 당연히 올 거라 믿고 살았다. 아침이 오는 것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눈 맞추며 웃는 일상도 공기처럼, 햇살처럼 늘 곁에 있을 거라 믿었다.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방학식날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교실 책상 서랍 속 잡동사니들은 3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주인을 만났다.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 새 학기에 만나자던 아이와의 약속은 나는 결국 지키지 못했다.
서랍을 정리하는 새로운 습관 속에서, 가끔 오래전 방학식 날 그 아이가 떠오르곤 한다. 초록색 우산을 쥐여주며 조금 더 따뜻한 눈빛을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겨울바람처럼 차갑게 내뱉었던 마지막 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내 마음에 가라앉아 있다.
소년은 무사히 졸업했다는 소식만 전해졌고,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다만 살아가면서 만나는 대책 없는 소나기 앞에 또 다른 초록색 우산들이 그때보다는 더 따뜻한 온기로 그의 삶에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겨울날 그 소년은 내가 만나야 할 내일, 다가올 하루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소년과 소녀들에게, 식지 않은 온기를 담아 언젠가 함께 비를 피할 초록색 우산을 다시 건네고 싶다. 이번에는 조금 더 다정하고 온화한 미소로.
나는 오늘도 서랍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오늘이라는 서랍을 열면 그 안에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일상, 사랑하는 이들과의 웃음,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하루치의 수다가 가지런히 놓인다. 해야 할 말, 전해야 할 마음, 치워야 할 미련을 있어야 하는 자리에 조심스레 옮겨 놓는다.
오늘따라 서랍 닫히는 소리가 바람결처럼 가볍게 들린다.